정치의 계절에 부치는 말

 

모국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진흙탕 개싸움이 한창이다. 요즘은 사나흘에 한 번 꼴로 정치의 관행도, 헌법 정신도, 인간의 도리도 짓밟히는 모습에 놀란다. 이재명 야당 대표의 목을 칼로 찌른 테러범을 경찰 정부 여당이 싸고돌며 쉬쉬하고, 생명이 위태롭던 이재명을 되레 역공격하는 부류가 설쳐댔다. 중심을 잡고 세상을 계도하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은 실종 상태이니,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할 한국사회의 능력마저 마비된 것 같다. 한국의 정치를 푸틴의 러시아 수준으로 단번에 끌어내린 그 사태는 실시간으로 세계에 전해져, 부러움을 사던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에 큰 타격을 입혔다. 당국자들은 이 역사적 죗값을 어찌 감당하려는지.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이 늘 뉴스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뉴스 콘텐츠도 온통 그들의 동정動靜이 도배한다. 지도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느 시장 바닥에서 떡볶이, 순대를 사 먹었는지. 시시껄렁한 이런 기사가 뉴스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나라의 운영권을 쥔 지도부가 정치를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들린다.

 

잘 다스려지는 나라의 국민은 생활이 바빠서, 또는 행복한 삶에 취해서 통치자가 누군지 혹은 그가 나라를 잘 이끌고 있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왜냐하면 국민이 현재 누리는 것이 오직 자신의 재주와 노력으로 이룬 것이요, 지도자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인간이 제 잘난 맛에 사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지난날 ‘땡전 뉴스’란 게 있었다. ‘80년 전두환이 국민을 겁박하던 5공화국 때 권정달, 허화평, 허문도, 이상재 등 간사한 재주꾼들이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반대되는 주장을 할 만한 언론인은 감옥이나 삼청교육대로 보내 매질로써 다스렸다. 살아남은 언론인 또는 언론사는 전두환 대통령의 시책에 순응할 뿐이었다. 9시 뉴스는 언제나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이란 말로써 시작했다. 세상의 중요한 일, 큰일이 모두 (하느님 같은)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말미암고, 그가 있어서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는 분위기의 연출이었다.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에는 신군부 집단의 폭압적 위세가 살기등등해서, 웬만한 용기로써는 말 한마디도 드러내 하질 못했다. 전두환이 온 국민을 노예처럼 비굴하게 만들어갔고, 또한 국민은 그렇게 취급 당하던 서글픈 시절이었다. 오늘 우리가 비웃는 북한 사회의 실상과도 견줄 만했던가 싶다.

 

군사 통치에 마침표를 찍게 한 사건이 ‘87년 6.10 시민항쟁이요, 6.29 대통령 직선제 수용 선언이요, ‘87년 신헌법 체제의 등장이다. 그것은 인권을 극도로 억압하며 ‘긴급조치’를 남발한 박정희 정권 말의 유신 독재에 이어가던 전두환 신군부의 폭정을, 격이 높은 정치 체제로 바꾸게 한 변혁이었다. 긴 세월에 죽고 다치고 쫓겨난 사람들, 해직된 언론인들, 광주 5.18 항쟁 때 죽은 원혼들, 박종철. 이한열 등 많은 열사의 희생을 딛고 궐기한 학생 데모에 30~40대 넥타이부대가 합세하면서, 결국 독재자의 아집을 꺾은 승리였다. 18세기 말 프랑스 시민혁명의 과정과도 닮은 ‘민주주의 자력 쟁취’는 프랑스, 영국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사례로서, 우리 민족이 자긍심을 갖는 역사적 금자탑이다. 한국의 그 혁명은 경제 발전과 짝을 이룬 것이기에, 더욱 빛이 난다.

 

선거철이 되니, 그간 역사적 과업에 목숨 던져 싸운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자들이 고개를 쳐든다. 그런 인간들의 비아냥인즉슨 “죽창가를 부르고 있네… 운동권 출신들이 평생 그 잘난 공적을 우려먹으려고…“ 등등.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운동권(반독재 투쟁) 세력 중 한두 명의 일탈적 행위를 콕 집어내고 그것으로 전체를 일반화하여 야권을 비꼬며 모욕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그런 표현은 수긍할 수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의 잘난 조상들이 일본에 팔아 넘긴 그 나라를 찾겠다고, 목숨을 던진 투사가 놀림 받을 존재라는 말인가. 아니라면 자기 조상의 친일 매국을 그렇게라도 해서 미화하고 싶어선가. 또 누가 무슨 자격으로 민주투사를 폄훼하는가. 독재자의 사랑 속에 단물을 빨며 희희낙락하던 옛날이 그리워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한국이 아무리 자유 천지가 되었다 한들 안중근. 윤봉길. 홍범도, 김좌진을 테러리스트라 칭하고, 이완용. 박제순.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을 충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은가. 근래 국제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한국 지도자의 무능. 무정견을, 그리고 그 부인과 처가의 각종 범법 행위를 그런 잡소리로써 얼렁뚱땅 덮고 비껴가려 했다면, 꿈을 깨라.

 

대통령 참석의 행사장에서,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끌고 나가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그것이 대통령 자신의 협량狹量을 폭로하는 줄도 모르는지? 또 정권 심판론이 이슈로 떠오른 이번 총선에서, 야당 지도자의 트집거리만 잡으며 싹수없는 말장난으로 일관하는 여당 대표의 처신은, 경망스럽고 쪼잔하다. 그대가 정녕 나라의 큰 일꾼으로 드러나기를 바란다면 이 기회에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당당한 경륜을 펼치라. 농담 따먹기 식의 궤변을 입에 달고 살면, 코미디언 이미지를 벗기는 어려울 테니, 그런 짓은 그만두라. 피 어린 투쟁으로 이룩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어떤 시도도, 헛된 화禍만 초래할 것임은 꼭 명심하고. (202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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