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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ywlee
2020-10-21
이재명 vs. 이낙연-닮은 듯 다른 두 흙수저

  ▲이낙연(왼쪽) 씨와 이재명 씨    한국의 차기 20대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이다. 여권에서는 일찌감치 양강구도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이낙연과 이재명. 정책대결은 아직 미지수이지만 두 사람의 캐릭터가 볼만하다. ‘달달한 고구마’와 ‘시원한 사이다’로 비유되는 두 이(李)씨. 둘 다 흙수저 출신이란 점에서 닮은 듯하지만 걸어온 길은 사뭇 다르다.   투박, 속시원한 이재명    이재명은 서민들의 카타르시스를 대신할 후련한 발언과 행동으로 ‘탄산충분 사이다’로 불린다. 시원하게 속을 풀어주는 사이다 같지만 탄산이 과하면 불편해지기도 한다는 뜻이다. 1963년 12월 생이니 올해 만56세로 이낙연(67)보다 11살 적다. 유년시절 가정환경은 문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본래 5남4녀지만 누이 두 명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5남2녀 중 다섯째로 자랐다.    열 살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어머니와 일곱 남매가 화전(火田)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재명 일가는 성남의 빈민촌에 정착한다. 나이가 어린 이재명은 다른 사람의 신분과 이름을 빌려가며 가족 생계를 위해 여러 공단(工團)을 전전했다. 설상가상,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팔이 눌리는 사고로 장애6급 판정을 받아 군면제 판정을 받았다. 부상 후유증으로 일을 쉬는 사이 공부에 매진해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기회가 차단된 환경에서 다시 공장 노동자 신세를 이어가야 했다.    이후 4년 전액장학금에 매월 생활비 30만원 지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제시한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6년 뒤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판.검사 임용을 앞두고 갈등을 거듭한다. 군사정권의 주구(走狗)가 되지 않겠다는 소신과 집안형편 사이의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인권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그의 철학에 매료된다. "변호사는 굶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   0…‘변호사 이재명’은 주로 노동과 인권사건 변호를 맡으며 민변 활동을 했다. 시민들과 뜻을 모아 '성남시민모임'을 창립, 시민운동에도 뛰어들었다. 각종 행정비리 특혜의혹을 파헤쳤다. 정치권력, 언론, 돈, 조직 등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하지만 거대한 부패 기득권 세력 앞에 한계를 절감했다.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병원들이 문을 닫으며 의료공백이 심각해졌다. 이에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시민 2만 명의 뜻을 모아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으나 시의회로부터 47초 만에 날치기를 당하고 만다. 교회 지하실에서 서럽게 울던 그는 시민의 권한을 대리하는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치 입문을 결심한 순간이다.    이재명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원칙과 공정'이다. “백성은 가난보다 불공정에 분노한다(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는게 그의 소신이다. 정치 뿐 아니라 업무, 일상생활에서도 정도(正道)를 지키려 한다. 그를 따라다니는 의혹 중 하나인 ‘형수욕설' 논란 역시 원칙을 지키기 위한 형과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디테일’에 강한 이낙연  이낙연은 잡초같은 삶을 살아온 이재명에 비하면 꽃길을 걸어온 듯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 흙수저다. 전남 영광의 가난한 농가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한 이낙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가 그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가난한 부모님을 설득, 중학교부터 광주로 보냈다.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농사일과 채소장사를 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그후 그는 한국 최고라는 서울 법대에 들어갔다.    그는 사법, 행정고시에 한차례씩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계속 도전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하숙비가 없어 선배네 하숙집과 친구네 자취방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고, 1년은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는 등 몸이 망가져 있는데 영장이 나오길래 졸업식 일주일 전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 한 친구가 자신의 월급 절반을 주면서 고시공부를 하도록 후원해줬지만 동생들은 크는데 나만 공부한다는 게 양심에 용납되지 않아 그만두고 취직했다”고 했다. 전역 후 은행에 취업했다가 기자(동아일보)로 진로를 바꿨다.    이낙연은 오랜 기자 생활과 풍부한 행정경험이 어우러져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수첩엔 깨알 메모가 가득하다. “21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얻은 많은 것들은 제 생애에 걸쳐 소중한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든 판단을 정확한 사실에서 하려는 버릇, 어떤 사안이든 균형 있게 보려는 습성, 정확하되 야비하지 않게 표현하려는 노력, 이 모든 것은 신문기자 경험이 제게 남긴 귀중한 선물이다.”   0…올해 초까지만 해도 여론 지지도에서 이낙연이 훨씬 앞서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격차가 줄고 급기야 이재명이 앞서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속된 말로 "밋밋한 이낙연보다 도발적인 이재명이 낫다"는 대중들의 심사 때문이다. 이낙연은 실수를 안 하려고 작정하고 밋밋하게 얘기하는 반면, 이재명은 아예 사고를 치려고 작정하고 도발적으로 덤비는 스타일이다.    야권에 뚜렷한 인물이 없기에 현재로선 한집안 싸움 양상이다. 그러나 진영 내 양자 구도는  골육상쟁(骨肉相爭)처럼 훨씬 더 치열하고 어렵다. 1987년 김영삼-김대중, 2007년 이명박-박근혜, 2012년 문재인-안철수 경우가 그 교훈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나마 여기까지 온 한국의  민주화가 또다시 5년여 전으로 후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박원순 같은 사람이 민주국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가 없으니 굳이 두 이씨 중에 한 명을 들라면 차라리 이재명이 낫다는 생각이다. 비전과 인품도 중요하지만 한국같이 상대 진영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이재명 같은) 단단한 맷집과 강단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youngho2017
2020-10-21
WWI 배경 영화(I)-'서부 전선 이상 없다'(2)

  (지난 호에 이어) 1. 제1부: 교수의 참전 선동과 신병 훈련소(계속)  힘멜슈토스는 신병들을 하필이면 진흙탕과 웅덩이 속으로 기어가게 하는 등 냉혹하고 비정한 훈련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듯하다. 어느 날 훈련이 끝난 뒤 신병들이 "아 그 쥐새끼 같은 놈! 휴식시간에도 검열한다며 쉬지도 못하게 하고 잠도 못자게 하는 비열한 놈"이라며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다. [註: 힘멜슈토스의 별명이 '노란 쥐(Yellow Rat)'인데 '비겁하고 교활한 놈' '발정난 쥐새끼'란 뜻의 욕이다.]    드디어 젊은이들이 신병훈련을 끝내고 전선에 송출되기 전날 밤에 술에 취해 "전방 포복, 엎드려!"라고 흥얼거리며 홀로 막사로 돌아오는 힘멜슈토스를 침대시트를 덮어씌워 납치하여 바지를 까내리고 엉덩이에 매타작을 한 후 진흙탕에 처박아 복수를 한다.   2. 제2부: 최전방에 배치되는 신병들  신병들이 열차로 전선으로 이동한다. 질질 끌며 내리는 빗속에 포탄이 난무하고 진흙탕 길에 말이 끄는 수레가 질주하는 등 대혼란 상태에 있는 어느 프랑스 마을에 도착하는데, 사방에 죽은 군인들의 시체가 깔려있어 요제프 벤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신병들은 처음으로 적의 포격 소리를 들으며 독일군들이 보급품과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파괴된 어느 공장 안에 있던 2중대 고참들인 베스트휘스(리처드 알렉산더), 데터링(해롤드 굿윈)과 탸덴(조지 '슬림' 서머빌) 등이 '풋내기' 신참들을 반긴다. 파울이 아침 한끼 외엔 여태 굶고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여기는 식욕이 안 당기는 곳이야. 우리는 어제 아침부터 지금껏 건초와 면도날만으로 연명하고 있어."라며 "귀신같은 전사인 슈타니슬라우스 '카트' 카친스키(루이스 볼하임)가 항상 먹을 것을 잘 구해온다."는 탸덴의 대답이 돌아온다.    한편 야외취사장에서 도살된 통돼지 한 마리를 훔쳐 어깨에 매고 돌아온 카트는, 탸덴이 '미래의 장군 지원병'이라고 놀리는 젊은 보충병들에게 "때가 되면 너희 지원병 중 하나를 불러내서 왜 학교를 그만두고 입대했는지 알아보겠다"며 "쉬어! 여긴 연병장이 아냐"라고 말한다. 그는 종이돈 대신 비누, 담배, 여송연, 술 등 보급품을 교환하는 조건으로 신참들이 저녁식사를 먹도록 해준다.    그날 밤, 젊은 신병들은 카트를 비롯한 선임자와 함께 전방 참호에 철조망 가설작업 명령을 받는다. 일렬 종대로 행진하는 신병들은 그들을 태워주고 내일 아침에 오겠다며 돌아가는 트럭을 자꾸만 뒤돌아 본다. 공포에 질린 듯 원망하는 듯 슬픈 눈빛의 표정이다. [註: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 또 한 번 나온다.]    목이 굵고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달리 카친스키는 신병들의 보호막이 되어주며 그들에게 실용적인 충고를 해주는 고참이다. "포탄이 터지면 겁이 좀 날 거야."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정말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지자 그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카버한다. 그 바람에 신병 중 한 명은 오줌을 싼다.    카친스키는 "상관 없어. 고참들뿐 아니라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귀대하면 깨끗한 속옷을 줄게."라며 사기를 진작시킨다. 그리고 하던 말을 계속한다. "저런 포탄은 신경 꺼도 돼. 저렇게 큰 포탄은 소리만 요란하고 8km 후방에 떨어지거든…. 진짜 주의해야 할 것은 '가벼운 놈들'이야. 걔는 경고음도 별로 없이 '슈우웅 꽝' 식이지. 그 소리가 들리면 엎드려! 어머니 대지 위에 몸을 납작 붙여. 땅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나한테서 눈 떼지 마. 내가 엎드리면 너희도 엎드려. 나보다 더 빨리!"    그는 분명 전쟁의 공포와 상실, 박탈감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선에서의 첫날 밤, 조명탄이 터지고 포탄이 날며 일제 사격이 벌어지는 전방에서 철조망을 설치하던 중 벤이 포탄의 파편을 맞고 비명을 지른다. "내 눈! 앞이 안 보여." 말릴 틈도 없이 그가 일어서 비틀거리며 적진 방향으로 가다 기관총을 맞고 죽는다.    죽은 친구를 구하러 가려고 하자 카친스키는 친구든 누구였든 죽은 시체를 찾으러 적진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를 설명하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순진했던 학생들은 전쟁은 더 이상 낭만적이거나 고귀한 것이 아니며 잔인한 죽음과 파괴뿐인 생지옥이라는 첫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음 날, 트럭으로 막사로 돌아오자 카친스키가 풀이 죽어있는 파울에게 "이제 다른 파티장으로 행군해야 돼. 이번 파티는 아주 오래 계속될 거야. 힘내, 가자!"하고 격려한다.   3. 제3부: 전쟁의 잔혹성과 공포의 경험  지하 벙커 속에서 쉬지 않고 퍼붓는 포탄소리를 들으며 카친스키와 탸덴, 파울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반면, 여러 날을 굶주림에 지친 보충병들은 귀를 막고 공포의 악몽과 폐소공포증에 시달리며 부르르 떨고 있다.    포격쇼크를 받은 켐머리히가 잠을 자다가 죽은 벤을 부르며 헛소리를 한다. 벙커에 온 중대장 베르팅크 중령(G. 패트 콜린스)이 오늘 저녁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식량을 보급받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나간다.    잠을 깬 켐머리히가 히스테리컬한 비명을 지르며 정신 발작 증세를 보이자 카친스키가 한방 쳐서 때려 눕힌다. 그때 지하 벙커의 입구 쪽이 포격을 맞아 허물어지자 켐머리히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바람에 허벅지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베르팅크 중령이 그를 구출하여 들것에 실려 보낸다.    카친스키가 먹을 것을 버킷에 담아 벙커로 들어온다. 음식 냄새에 쥐떼가 덮치자 야전삽으로 때려잡느라 벙커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때 갑자기 포격이 멈추자 병사들은 벙커 밖으로 나가 각자의 참호 위치로 돌아간다.    카메라가 참호 속 병사들의 머리 위를 크레인 샷으로 훑고 지나간다. [註: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크레인 샷은 그 이후 영화 기법에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서 파울은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 왜냐 하면 그의 헬멧 위의 스파이크가 총에 맞아 없어졌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신병 훈련을 끝내고 전출되기 전날 밤, 파울 보이머(류 에어스·가운데)가 교관 힘멜슈토스를 골탕 먹일 계책을 친구들에게 알려주는데…   ▲ 카친스키(루이스 볼하임 ·가운데 서있는 이)는 종이돈 대신 필수 보급품을 교환하는 조건으로 신참들이 저녁식사를 먹도록 해준다.   ▲ 카친스키(가운데)는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달리 신병들의 보호막이 되어주며 그들에게 실용적인 충고를 해주는 고참이다.   ▲ 포탄이 난무하는 전방에서 철조망을 설치하던 중 친구 벤이 기관총을 맞고 죽는 광경에 경악하는 신참들.   ▲ 음식 냄새를 맡고 쥐떼가 덮치자 카친스키가 먼저 신발로 내리치는데 나중엔 야전삽으로 때려잡느라 벙커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 포격쇼크를 받은 켐머리히(벤 알렉산더)가 벙커 밖으로 뛰쳐나가는 바람에 허벅지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Hwanghyunsoo
2020-10-21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이번 주 내내 아내와 오크리지 트레일(Oakridge Trail)을 걸었다. 이제 몇 주 있으면 이 아름다운 계절이 지나가 버릴 것 같아, 눈에 담으려 한다. 세월을 탈 나이는 아니지만, 이렇듯 아쉬운 가을이 없었고 시간의 빠름을 느껴본 적이 없다. 어느 시인이 “누구나 '봄은 왔다’라고 하지만, 가을은 그리 말하지 않아요. 그냥 모두가 ‘가을이 오고 있다’라고. ” 했던 구절이 자꾸 맴돈다. 건강히 걸을 수 있어 감사한 가을이다.   예년 같으면 아무리 문화 행사가 귀한 토론토에서도 10월이 되면 다양한 공연들이 주말마다 펼쳐져 캘린더에 적어 놓았다가 찾아가고는 했는데, 올해는 그마저의 기쁨도 누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을 정서도 메말라 가고 있다.   10월이 되면 음악회에 빠지지 않는 노래가 있다. 바리톤 김동규의 대표곡이 되다시피 한 ‘10월 어느 멋진 날에’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은 원래 노르웨이 출신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이 편곡한 ‘봄의 소야곡(Serenade to spring)’에 한혜경이 노랫말을 붙이고 김동규가 부른 곡이다.   ▲바리톤 김동규   이 노래 뒤에는 김동규의 울적한 사연이 있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을 나와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의 오페라 주역으로 활발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9년 가을에 부인과 헤어지며 그의 연주 생활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이혼 스트레스 때문에 서둘러 귀국해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다. 부모님들도 사이가 안 좋아 이혼한 상태여서 혼란스러운 상태로 쪽방에서 지내면서 1년 가까이 노래를 하지 않는다.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평소 친분이 있던 MBC 라디오 <골든디스크> 진행자 김기덕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다. 김기덕은 김동규에게 클래식이 아닌 좀 쉬어 가는 노래, 편안하게 가는 노래를 해보라고 말한다. 당시에는 특별한 장르였던 크로스오버 형태의 음악을 말하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중 우연히 시크릿 가든의 ‘봄의 소야곡’을 듣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원래 이 곡은 연주곡이어서 가사가 없고 멜로디뿐이었다. 그래서 기획사에 부탁해 가사를 만든다.   작사가 한경혜는 2001년 호주에 있을 때 이 곡을 의뢰 받는다. 호주는 한국과 날씨가 반대여서 여름에 서울에서 떠났지만 호주는 초겨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목을 ‘봄의 소야곡(Serenade to spring)’과 비슷하게 <5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하려 했었다. 호주의 겨울이 가고 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작사를 만들어 가며 4월이나 5월이면 어떻고 10월이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당초 제목으로 붙였던 5월보다는 10월이라는 느낌이 가슴에 더 다가왔다. 그래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바꿨다. 고심 끝에 가사를 완성한 후 시드니 조지타운의 어느 PC방에 들어가 메일로 서울의 기획사에 보낸다. 이 노래의 녹음이 10월에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사가 한경혜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중략->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는 내가 널 만났는데 더 이상 바라면 죄라는 절절함은 젊은 연인 사이가 아니면 용납이 안 될 정도로 굽신 거리는 표현이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세상 사는 이유가 오직 너 때문이라는 거다. 넋 나간 듯 여운이 있는 마무리도 좋다.   하지만, 이 노랫말은 숨은 뜻이 있다. 작사가는 ‘너’는 사랑하는 이가 아닌,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밝힌다. 한경혜는 김건모의 ‘사랑이 떠나가네’, 신승훈의 ‘엄마야’, 임상아의 ‘뮤지컬’ 등 수많은 히트곡의 가사를 쓴 유명 작사가다. 동시에 단편소설 <비행>으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았고, 싱글맘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엄마에겐 남자가 필요해>를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한경혜는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이 크게 히트하며 작사가로 널리 알려진다. 그 노랫말처럼 그녀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1998년 결혼을 했고, 이듬해에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고 한다. 갈등을 거듭하던 끝에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이혼을 결정한 것이다. “남편은 자신이 한 달간 꼬박 일하고 야근까지 한 뒤 받는 월급이 제가 하룻밤 가사 써서 버는 돈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어요. 그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다 사업가로 나섰는데 하필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그 또한 잘되지 않았죠.”라고 여성동아에서 밝힌다.   한경혜는 자신이 이혼 후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을 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쓴다. 공교롭게도 노래를 부른 김동규도 비슷한 시기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그런지 ‘10월의 멋진 날에’를 들으면 애절한 사랑 속에 뭔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 있다. 김동규는 이 봄 멜로디를 노랫말처럼 가을풍으로 묘하게 바꿔 부른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10월의 어느 멋진 날’은 예상치 못할 만큼 빠르게 인기를 얻고 김동규는 대스타가 된다. 특히 조수미와 김동규의 환상적인 듀오는 음악사에 남을 명곡을 남긴다.   바리톤 김동규와 작사가 한경혜의 이혼. 그 아픈 감정이 가을 멜로디를 타고 억눌려 있던 감성을 풍성하게 부풀려 사랑의 세레나데를 만들었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이 없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나?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jsshon
2020-10-21
여섯 달 만의 외출

  반년만의 외출이었다. 몸과 마음은 푸른 하늘을 훨훨 나는 새처럼 가벼웠다. 검은 안경에 마스크, 모자를 쓴, 완전 방역의 실천이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는 염려를 딛고 떠난 토론토 나들이가 약간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수개월간 곧 풀리겠지 하는 희망으로 접촉 제약, 외출 제한의 예방수칙을 철저하게 엄수하였다. 온라인에 비대면 접촉으로 생활환경을 조정하면서 코로나가 힘이 빠져서 자비를 베풀거나 백신 개발이 속히 성취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전화나 전자 메일로나마 소식을 주고받던 친지들도 차츰 뜸해지고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여 거리의 길이도 대인관계를 소원하게 하는데 합세하는 듯하였다. 맺고 끊는 시간의 제약이 없는 삶은 방향도 속력도 정함이 없이 자유자재더니 차츰 긴장감과 탄력을 잃은 속성이 고착화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졌다.   2, 3차 단계적으로 제약이 풀리고 더욱 세심한 방역지침을 지켜야 하지만 드디어 학교가 개학을 하였다. 노란 스쿨버스가 달리는 것은 보기만 해도 막혔던 숨통이 확 트이는 듯 가슴속이 신선한 활력으로 넘쳐흘렀다.   때맞추어 몇 단체들의 모임이 이어지고 미루고 망설이다 용기를 다해 무기력의 거미줄에서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고속도로에는 제법 많은 차들이 달렸지만 전과 비교하면 텅 빈 거리나 다름없었다.   12시 애국지사 기념사업회 이사회에 맞추어 출발했는데, 막힘 없는 교통으로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생겼다. 오래간만에 신문사에 들려 마스크를 쓴 채 반가운 수(手)인사를 하고 문서선교회에 들렸다. 코로나 사태로 영성 책자 ‘오늘의 양식’ 4천여 권을 우송하게 된 선교회는 모임 제약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어 몇 분이 도맡아 수고가 많고 발송하는데도 차질을 겪고 있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내 담당의 책자는 우송 대신 상자에 담아 문 앞에 내놓아 달라고 미리 전화하였었다. 회의가 끝난 후로 계획하였던 일들을 미리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년 만에 만난 이사님들은 안위가 염려스러웠던 때문만이 아니라 건강을 지켜 온 것이 더욱 기쁘고 고맙기까지 하였다. 식당에 오는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들어오는 우스운 모습들이지만 팔꿈치로 치고 받으며 즐거운 인사를 나누었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 식사하고 회의는 프린트한 안건들을 주축으로 진행되었다. 입을 가린 탓인지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이 없이 회의는 간단하게 끝났다.     앞으로의 모든 회의도 이렇게 실행되었으면 하는 흡족한 마음으로 가벼운 한담을 나누게 되었다. 간호학 교수 P선생이 엊그제 떠나신 수필가 고 박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장병 수술을 예정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수술이 취소되고 지연되어 수술을 기다리는 중에 돌아가셨다 한다.   초대 수필분과장이시고 뒤를 이어 2대 분과장 직을 맡아 수필 문학을 위해 함께 고생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흐르며 애석함이 밀려왔다. 갑자기 칸막이 저쪽 테이블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 “언니” 하며 다가왔다. 몬트리올에 살던 오빠가 세상 떠났는데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해 전해주지 못했다며 눈시울이 빨개졌다.   아현동 주일학교를 함께 다니던 어린 시절의 영상들이 순식간에 둘둘 말려 날아가 버리는 듯 허탈하였다. 내 삶에 있어 가장 오래된 유일한 동화를 캐나다에서 함께 즐길 사람은 여동생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솟구쳤다. 마지막 인사도 못 하다니, 이때처럼 코로나가 밉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코로나는 전염성이 빠르고 치유가 거의 불가하고, 치사율이 높은 무서운 병이라고만 생각했다.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하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모임 장소에 가지 말라는 예방 지침을 순순히 복종하는 외에는 도리 없는 병이라 했다.   아침 토론토 스타에는 자녀들의 개학과 안전을 위한 여러 석학들의 글이 있었다. 토론토 대학 국제안전 부교수 아이사 아마드(Aisha Ahmad)는 ‘6개월의 벽’을 지나왔는데 새로운 6개월의 벽에 대한 점검을 시행해야 한다 하고, 심리학자 안 마텐(Ann Marten)은 코비드에 대한 사람들의 돌격력이 저하되어 새로운 충전이 필요하다 하였다. 가정요법사 엘리슨 쉐퍼(Alyson Schafer)는 부모들에게 천천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의 대응, 신체를 잘 보존하기, 가족회의 등과 함께 미지의 코로나 탐험가로 코로나를 탐색하고 대처하라고 조언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적으로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예방의 길만을 달려온 것은 아닐까. 모든 예방 지침의 준수는 개인뿐 아니라 코로나를 궤멸시키는 방편임을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6개월 만의 외출은 코로나의 극복을 위해 모두가 새로운 공격의 자세를 취해야 하리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leed2017
2020-10-21
마음을 보듬는 시조

   나는 기분이 좋거나 울적해지면 노래는 부르는 습성이 있다. 기분이 좋으면 그 기분 좋은 상태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토록 유지하기 위하여, 울적하면 울적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지금도 자동차를 몰고 길에 나서면 자동차 안에서 흘러간 가요를 부를 때가 많다. 우리 집에서는 집 안에서 노래는 못 부르게 하니 어릴 때는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는 날에, 커서는 자동차 안에서 내 마음대로 운전대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어릴 적 밤늦게 예안읍에서 혼자 생가 역동집으로 돌아올 때는 인가가 없는 청고개를 넘어야 했다. 양쪽 산에 있는 무덤 속에서 귀신이 나와 뒤에서 내 목을 꽉 잡으며 ‘동렬이 이놈!” 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할 때는 온몸이 얼어 붙는다. 이런 비상상황에는 목이 터져라 크게 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넘곤 했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주로 용감무쌍한 군가가 대부분.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 만이냐/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이런 씩씩한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데 아무리 귀신이라 한들 이 용감한 소년에게 어찌 함부로 덤벼들 생각을 하겠는가.    나는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 직장을 얻은 후부터 내 기분을 새롭게 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옛시조를 흥얼거렸다. 한창 때 나는 우리의 옛시조 300수 정도를 외웠으니 화장실에서나 길을 걸을 때 시조를 외운다는 것은 내게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다. 아마도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는 강단에 서야 하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꾀로 시작한 것이었지 싶다.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아 웃지마라 구만리 장천에 너도 날고 나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飛鳥)니 너와 내가 다르랴’    위에 적은 숙종 때의 무신 이태의 시조를 읊으면 내가 다른 백인교수에 비해 못한 것이 뭣이냐는 항의성 자기주장이니 20배 30배 넘는 용기가 용솟음친다. 주먹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이긴 것 같은 용기-.    우리의 감정을 새롭게 바꾸는 것은 노래나 시조뿐이 아니다.  우리가 행하는 행동 모두가 우리의 감정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맑은 하늘에 몇 점 구름이 떠가는 날 숲길을 따라 산책을 나서는 것도 기분전환, 술을 한잔 마시며 좋은 친구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기분전환이 된다. 그러니 우리가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는 모든 행동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분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 된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유쾌한 행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결과가 괴롭거나 슬픈 행동을 하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 하나는 결과가 슬프거나 유쾌하지 못한 생각이나 행동을 자꾸 되풀이하면서 우울증이 없어지기만 바라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행동도 그것이 유쾌한 결과를 가져올 행동이라면 억지로라도 그 행동을 하고 나면 유쾌한 감정이 뒤따르는 것이다.    나는 몇 주 전에 마음을 보듬는 시조 한수를 얻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 얘기는 이렇다. 나는 노래 대신 자주 흥얼거리는 시조 구절이 하나 있다.      “…오뉴월 하루 해가 이다지도 길다더냐/ 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것이 없느니”    이 시구는 노산(鷺山) 이은상의 ‘적벽놀이’라는 기행수필에 나오는 시조다. 지금부터 꼭 67년 전 내가 내 고향 안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국어시간에 배운 시조다. 그런데 나는 이 시조의 맨 처음 시작을 잊어버려 중장과 종장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을 당해서건 내가 너무 성급하게 군다는 생각이 들 때면 “오뉴월 하루 해가 이다지도 길다더냐/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느니”로 끝나는 시조 구절만 외면 먼지 날리는 황토길에 물을 뿌리는 것처럼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시조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문제는 이 시조의 시작, 즉 초장을 잊어버려 생각이 안난다는 것이다. 내깐에는 무진 애를 썼으나 헛수고였다. 방법이 없어서 몇 주 전 어느날 나장환 형에게 전화를 하고 “나형도 틀림없이 국어시간에 배웠을테니 좀 찾아 달라”고 실로 애절한 부탁을 했다.    나형은 나와 동갑. 지금부터 한 30여년 전 내가 런던 온타리오에 살 때 조지훈의 시 “빛을 찾아 가는 길”의 시작을 잊어버려 찾고 있었다. 그때 나형의 도움으로 그 시의 시작을 찾아냈다. 이것이 나와 그의 교제의 시작이었다. 나형은 뛰어난 기억력에 책을 많이 읽는 선비 타입의 노인. 조선 시가(詩歌)에 대한 실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시가를 좀 아는 체 혼자 떠들다가도 나형이 있을 때는 입조심을 한다.    그런데 생각 외로 나형에게서 빠른 답이 왔다. 노산의 ‘적벽놀이’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 시조는 다음과 같다.   적벽유(遊) ‘백년도 잠깐이요 천년도 꿈이라거든 여름날 하루 해가 그리도 길더구나 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느니’    “여름날 하루 해가 그리도 길더구나”를 나는 “오뉴월 하루 해가 이다지도 길다더냐”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잘못 기억한 파편이 노산의 오리지널보다 못하지는 않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자 가슴이 뿌듯해졌다.    인간의 기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장기 기억으로 머릿속에 일단 저장된 정보는 처음 저장된 상태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정보에 따라 먼저 저장된 기억 내용이 흘러나온 용암이 천천히 모양을 바꾸듯 기억된 내용도 바뀐다고 한다.    “여름날 하루 해”가 “오뉴월 하루 해”로, “그리도 길더구나”가 “이다지도 길다더냐”로 바뀌어 있었다. 배운 지 67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이 정도로 원본 못지않게 근사한 형태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대견한 것. 칭찬이 마땅하다는 어린아리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우선 보배 같은 시조를 한 수 얻게 되었다는 흥분 속에 나형에게 고맙다는 전화인사도 깜빡 잊고 며칠을 보냈다.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거나 가라앉히는 힘을 주는 것은 비단 노래뿐이 아니다. 그림이나 시(詩)나 소설 같은 예술작품 모두가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또한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예술의 장르(genre)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마는 어릴 때 익혀둔 시가(詩歌)는 어린 시절을 되살려 오는데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마치 홍난파의 ‘고향의 봄’을 나직이 부르면 고향마을이 눈앞에 살며시 내려앉은 것처럼-.    내가 안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S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짧은 말 짓기에서 잘 못하면 그 커다란 손으로 내려치는 출석부 형벌이 모하마드 알리한테 머리를 한방 맞은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나는 한 번도 맞아보진 않았다. 아마 내가 무척 아첨을 잘하고 귀엽게 굴었던 모양이다.    이제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 내 나이 어느덧 여든. 잃어버린 시 구절은 기적적으로 나에게 되돌아왔다. 백년도 잠깐이요, 천년도 꿈이라던 그 세월은 경상도 안동에서 흐르던 세월이나 찬바람 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흐르는 세월 간에 아무런 차이없이 흐른다. (2019. 5)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focus
2020-10-21
(독자기고)은퇴 후의 삶(1)

  레이 강 (Ray Ghang. 토론토 댄포스)    정년 퇴직 후 아파트로 이사했다. 연금이 나오면서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생각하게 되어 우선 내 주위의 작은 일부터 관심을 갖기로 하고 아파트 자치위원들이 하는 연중행사에 참여하였다. 봄부터 시작하는 화단 가꾸기와 공원과 냇가 청소 등을 하였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트리 장식과 소품전시를 하였는데 자치위원들과 함께 하다보니 금새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40여년 전에 기부받은 소품들을 매해 재사용하다보니 고물이 되어 보기가 너무 좋지 않아 내가 사비를 들여 요즘 새로나운 신제품들로 새로 장식하고 라디오도 구입하여 캐롤을 듣게 하고 색 전구도 보강하여 더 환하게 해놓으니 전혀 새로운 분위기가 되어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주위에 앉아 성탄 분위기를 즐긴다.    또 별도로 작은 탁자를 놓고 개인적으로 수집한 10여 점의 한국 전통 인형을 전시하였는데 여성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9월 말이 되어 Thanksgiving Day 분위기가 고조되면 대형 국화 화분 2개를 구입하여 로비 안에 탁자를 놓고 전시하였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휴게실 등에는 벽시계가 있으나 로비 출입구에는 없어서 벽시계를 구입하여 공시판 위 중앙에 걸어 놓았다. 그런데 며칠 후 수리를 위해 잠깐 방에 갖고 간 사이 어느 분이 자기의 크고 더 좋은 것을 걸어 놓고 사라졌다. 공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것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것 같아 내 개인적인 튄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우려를 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는 국경일에 국기를 거는 집이 한 곳도 없다. 그래서 대형 국기를 구입하여 국경일이 오면 정문 밖의 두 기둥에 줄로 연결하여 횡으로 길게 걸었다. 그런데 바람에 들떠서 항상 잘 보이지 않는다. 다음날 어느 분이 가는 줄로 기 한쪽 하단과 기둥 아래를 연결하여 묶으니 똑바로 펴져서 항상 잘보인다.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아이디어를 내서 동참해주니 나의 독단 행동이 아닌가 하던 걱정을 안하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백인 주류의 리더 그룹이 있어서 자치회장도 그들이 하고 연중 여러 행사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식품을 구입하여 로비 안 실내에서 판매하는 선행도 하고 있다.    국경일마다 착오없이 국기 하강을 철저히 이행하는 이 동양인에 대해 백인 여성 리더들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No.1이라고 치켜세워 주지만 나이 듬직하고 말이없는 백인 남성 리더들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다. 그들 백인들이 해야 할 일을 내가 묻지도 않고 했기 때문이다. 항상 무관심하게 행동하던 흑인 여성도 한 팔을 휘저으며 지지의 환호를 보낸다. 의외의 일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 무슨 잘못된 일이 생기면 차이니스가 했다고 백인들끼리 귓속말을 한다. 내가 보기엔 몇몇 중국인 부부는 나이도 많고 점잖아서 그들이 했다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나도 같은 동양인이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차별적인 귓속말을 소홀히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잘못된 관념을 타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인 노인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의식들, 싸이클링을 하거나 기타를 들고 가든에서 연습하며 과시하고 조킹을 하면서 로비에서 그들을 만나면 큰소리로 인사를 나누며 우정과 평등감을 갖도록 노력하였다. 싸이클링을 하니 벌써 그들이 먼저 말을건다. 백인들은 스포츠나 연예활동에 민감하고 존중하는 편이다.    몇년 전 어느 중국 청년이 버스에서 백인 청년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 바로 후에 오타와에서 백인 청년이 중국 청년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이곳 주류 신문기사는 중국인 사건에 대해 ‘야만적인…’이라고 기사가 시작되고 백인건에 대해서는 ‘oo병 환자로 추측되는…’이라고 기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똑같은 사건이지만 이 사회의 인종차별은 구조적으로 뿌리깊게 형성되어 있다. 그 후 이 사건의 재판은 백인은 무죄(병자이므로) 중국인은 중형이 선고되었다.    이처럼 인종에 대해 차별받는 소수민족은 연합된 파워를 갖고 필요할 때마다 차원높고 효과가 있는 대처를 할 수 있는 전담조직이 필요할 것 같다. 또 활성화한 홍보와 교육을 꾸준히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매스컴 운영부서가 있으면 좋을까 생각한다. 소수민족이 결집하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신들이 무심코 한 차별적인 한마디가 마음의 큰 상처를 준다는 인식을 확신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knyoon
2020-10-21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 이야기(7)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아내가 좋아 날뛰는 모습이라니! 남편의 목을 감싸 안아 질식할 뻔한 남편도 벅찬 행복에 겨워 말했어요. “여보, 이제 무어인의 유산에 대해 더 할말이 없겠지요? 앞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을 돕는다고 나를 나무라선 안되오.”    물지게꾼의 아내는 비밀을 지키기로 한 약속을 놀랍게 잘 지키고 있었지요. 하루 반나절동안은 동네 수다쟁이 마누라들에게 둘러싸여 지냈지만, 자기 옷이 너무 낡았다며 양해를 구하고 금빛 레이스와 방울이 달린 새 옷을 주문해야겠다고 말해두었어요.   또 남편이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지게 지는 일을 그만 둘 생각이란 것도 슬그머니 말해두고요. 여름엔 아이들을 데리고 산 공기가 좋은 시골에 가서 지내련다는 말도 덛부치고요.   이웃 아낙네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그 불쌍한 여자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든 말든 페레힐의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치장하기 시작 했어요. 누더기 옷차림에 목에는 동양의 진주목걸이를, 팔엔 무어인의 팔찌를, 머리엔 다이아몬드 화관을 쓰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깨진 거울쪽에 비친 자기 모습에 한없는 찬사를 보내기도 하구요.   운명의 장난인지, 길 건너 이발소에서 빈둥거리며 염탐하던 이발사 페드리요의 감시망에 그녀가 머리에 쓴 화관의 다이아몬드가 반짝! 걸린거에요. 다음 순간 그는 문구멍으로 물지게꾼의 아내가 동양의 신부처럼 화려하게 장식한 모습을 잘 관찰하고는, 읍장에게 당장에 달려갔어요.   잠시 후엔 굶은 이리 같은 형리가 냄새를 맡아, 운 사나운 페레힐은 그날 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재판관 앞에 불려 왔어요. 드디어 읍장님의 호령이 떨어졌어요.   “어찌된 건 가, 이 악당같으니. 너는 내게 그 이교도가 텅 빈 상자 말고 남긴 게 없다고 말했겠다! 그런데 네 처는 누더기 위에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휘감고 있다니, 비열한 자로다! 그 불상한 희생자에게서 노략질한 걸 다 내놓아라. 그리고 너 같은 자를 기다리다 지친 교수대에 매달릴 준비나 하라.”           겁에 질린 물지게꾼은 무릎을 꿇고 그가 보물을 찾게된 사연을 자세하게 털어놓았어요. 읍장은, 주문을 외운 무어인도 잡아오라고 명령했지요. 무어인이 반쯤 겁을 먹고 들어와 탐욕스런 집행자들과 풀이 죽은 물지게꾼을 보자 사태를 짐작했어요.   그는 페레힐 곁을 지나가며 가만히 말했어요. “이 한심한 작자야, 네 마누라에게 떠버리지 말라고 경고한걸 잊었나?” 무어인의 진술은 그 동료의 진술과 정확히 맞아 떨어졌으나, 읍장은 엄격한 수사와 투옥을 들먹거리며 협박조로 나오네요. 그러자 평소 빈틈없는 무어인이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어요.   “진정하십시오. 현명하신 재판관 나리. 우리 모두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느라 이 행운을 놓쳐선 안됩니다. 우리들 말고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비밀을 지킵시다. 그 동굴 안에 우리 모두 부자가 될만한 보화가 충분히 남아 있습죠.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약속만 해주신다면 그 문은 열릴 것이오, 아니면 그 동굴은 영원히 닫혀 있게 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jegonkim
2020-10-21
감기, 독감 그리고 코로나19(5)

   (지난 호에 이어) 그리고 감기 걸렸을 때 음주와 흡연은 면역을 저하시켜, 감기로 인해 목과 코 안에 세균 번식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만성 기관지염과 축농증과 같은 질병들의 합병증을 초래할 위험도 생긴다.   참고로 비타민C는 면역활동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혹은 비타민 B 등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귤이나 오렌지 등의 과일이나 고추나 피망, 파프리카 등 채소를 일정량 이상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비타민C는 매크로파지와 T세포의 활동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자유 라디칼을 이용한 감염세포 제거와 같은 포식활동이 증진된다. 물론 감기 바이러스에 의해 나타나는 질환은 모두 면역계가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평소에 과일이나 채소를 자주 섭취한다면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는 있다.   한의사들 중에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은 성질이 냉(冷)하다 하여 먹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필자 개인 의견으로는 영양학적으로 감기를 더 심하게 하는 음식은 없다고 생각된다. 만약 한의학적인 해석으로 냉한 성질 때문에 감기에 안 좋은 것이라 생각되면 마늘, 후추 등의 열이 있는 음식과 같이 먹어서 궁합을 맞출 수도 있다.   만약 감기 치료는 대증치료만으로도 증상 조절이 가능하다면, 가능하면 대증치료를 하면서 충분한 휴식을 통해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물론, 감기 증세가 장기간 길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기에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오히려 과도한 약물복용이 이루어질 수 있기에 주의를 요한다. 특히 코데인 같은 한외마약(限外麻藥) 성분의 약이 그렇다.   그러므로 감기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으면 일정한 기간에 걸쳐서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감기에 걸린 환자는 정신적, 육체적 안정을 취하고,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면서 과로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 등으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도록 하고, 가정에 있는 꿀을 탄 레몬차나 유자차, 생강차 등을 마시면 일시적인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가습기나 젖은 빨래 등으로 방안의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해 주고, 수분 섭취를 넉넉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가습기는 청소가 잘되지 않는 경우 균이 자라는 온상이 되므로 1주일에 최소 2회 이상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기약 종류 감기에 걸리면 우리가 시중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약들과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 복용할 수 있는 약이 있는데 이 약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일반적인 감기약 감기에 걸려있는 동안은 코 주변이 붇고 점액으로 가득 차 호흡이 어렵게 된다. 감기약은 혈관을 수축시켜 이 액체들이 흘러내리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콧물 감기약은 몸 전체의 혈관을 수축시키므로 혈압을 오르게 한다. 심장병이나 고혈압, 전립선 비대증 등의 병력을 가진 사람은 의사와 상담 후에 약을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진통해열제 캐나다, 미국 호흡기 학회에서는 몸살이나 해열제로 타이레놀을 추천한다. 아스피린은 좋으나 오랫동안 복용할 경우에 위장관에 출혈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항히스타민제  이 약들은 히스타민이라 불리는 물질의 알레르기 반응을 저지한다. 콧물감기를 치료하는데 사용되나 졸음을 유발하고 정신집중을 약하게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부작용이 없는 항히스타민제가 시판되고 있다.   감기 증상별 추천 약물과 한약 1. 오한, 발열, 몸살이 심해 몸이 춥고 온 몸이 무거우면서 힘이 없고 열이 나는 경우에는 ‘타이레놀’과 한약 처방인 ‘패독산’과 ‘쌍화탕’이 좋다. ‘타이레놀’은 해열, 진통효과가 좋고 한약 처방 ‘패독산’은 몸살과 두통에 효과가 있다. 이 두 약품을 섞어 쓰면 더욱 효과가 좋다.   앞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 ‘쌍화탕’은 흔히들 감기약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피로 회복에 좋은 자양강장제이다. 그러므로 ‘패독산’에 ‘쌍화탕’을 섞게 되면 감기몸살에 더욱 효과가 좋다.   2. 기침이 심하고 목이 아프며 몸살이 심한 경우에는 ‘덱시부프로펜’에 한약 처방인 ‘은교산’을 같이 복용하면 좋다. 참고로 ‘덱시부프로펜’이 추천된 이유는 ‘타이레놀’에 비해 소염효과가 좋으며, 해열 및 진통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약 처방인 ‘은교산’은 목의 통증과 기침을 없애는데 효과가 있다.   3. 콧물, 몸살, 발열이 있는 경우 (혹은 감기 초기일 경우)에는 ‘타이레놀’과 ‘갈근탕’ 과 ‘쌍화탕’을 같이 복용하면 좋다. ‘갈근탕’은 감기 초기 증상들을 완화시키는 데 매우 효과가 뛰어난 방제이다. 또한 감기에 의한 몸살과 콧물에도 좋다.   4. 따뜻한 차로 복용이 가능한 차(茶)나 약재(藥材)들은 페퍼민트(목감기), 생강차(몸살), 대추차, 도라지(기침가래), 인삼과 꿀(몸살감기), 귤껍질차, 오렌지 등이 있다.   그러나 자몽은 피하는 것이 좋은데, 자몽에는 체내에서 약을 대사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자가 만약 다른 만성질환약(당뇨, 혈압 등)을 복용 중이라면 주의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namsukpark
2020-10-21
감사드리는 마음가짐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하나님에게 추수를 감사하기위한 그리스도교적 휴일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어려움가운데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실 것을 믿고 감사한 청교도(淸敎徒, Puritans)들의 전통에 근간(根幹)을 두고 있다.    추수감사절은 전통적 북아메리카의 휴일로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미국의 경우 11월 넷째 목요일에 기념한다. 지난 세월의 개척민들이 겪었을 어려움은 물론이고 그리움도 아쉬움도 어렴풋이나마 애써 비견(鄙見)해본다.    “우리의 연수(延壽)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일지나 그 연수(年數)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 COVID-19 확진자가 된 트통이 마스크 쓰기를 무시하는 분위기에서 국정운영을 이끄는 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테다. 서로가 조심하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턱 마스크로 활보하는 이들도 적잖게 보인다. 너나없이 잘 이겨내야겠지만 조심하는 이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죽(粥)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범벅’이라 부르면서도 절대적인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에 힘들어하는 우리들이다. 자칫 꿈길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면 온통 남 탓으로 돌리기 바쁘다. 하긴 서로가 못마땅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덜어내지 못한 한편으론 분쟁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뉘라서 세상인심을 나무랄 순 없다지만 맹랑하고 허튼소린 자주하면 버릇이 된다. 달이 기울면 별빛이 반짝이듯이 우리들의 꿈 이야기는 마음먹고 노력하기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세상살이 “지나고 보면 다 헛되고 헛되도다!”는 이야길 너무나 많이 얻어듣는 우리들이다. ‘한바탕의 봄꿈이더라!’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있는가하면,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유한한 시간의 가치를 새삼 깨우치게 해준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하는 버나드·쇼의 해학적(諧謔的)인 비문(碑文)도 있다.    섬뜩한 예언(?) 아니면 저주인지 ‘방백마각 구혹화생(方百馬角 口或禾生)’을 깊은 산속 바위에 음각(陰刻)으로 새겨놓은 그 신통력(神通力)과 정곡을 찌르는 내용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다.    《맹자(孟子)》<진심(盡心)>에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은 양능(良能)이요, 생각하지 않고서도 아는 것은 양지(良知)(人之所不學而能者其良能也 所不盧而知者良知也)”라고 일러준다. 경험이나 교육에 말미암지 않고 생래적(生來的)으로 알거나, 행할 수 있는 마음의 작용을 이르는 말씀이다. 일상에 찌들고 지친 우리가 가끔 미소를 지을 때 아름다운 세상의 향기가 진정 우리의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참 좋겠다.    우리네 인생에서 뭔가 선한 일을 이루고 베풀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보람된 일이다. 바이러스의 준동(蠢動)때문에 제자릴 찾지 못하고 혼돈(混沌)에 빠졌을지나 마스크 착용을 거추장스럽게 여기진 않아야겠다. 트통이 입원했다니까 온갖 소식통이 바쁘기 짝이 없다.   너나없이 호언장담(豪言壯談)하기엔 너무나 미약한 존재임을, 자연의 섭리(攝理)를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깨닫는 우리들이었으면 오죽이겠다. 힘들고 답답하지만 마스크를 쓰는 마음은 나와 타인을 위해서다. 추측과 비유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우리 모두의 안녕과 건강을 빈다.   “발이 예쁜 달빛/ 댓돌 위에/가지런한 신발을/ 신어 봐요.// 아빠 신발 크고 무거워/ 도로 벗어놓고/ 엄마 신발 굽 높아 불편해/ 도로 벗어놓고// 꽃무늬 아기 신발/ 맘에 꼭 들어/ 밤이면 와서 신고 놀지요.// 꽃무늬 신발 신고/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아기 발걸음이/ 달빛처럼 환한 이유는/ 아무도 몰라요.” [정진숙 (1954~2020]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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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2020-10-21
추석 오빠

박순애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 왔어요. 일년을 쉼없이 걷고 또 걸어 머나먼 길 피로도 가실 새 없이 잠깐 뵈고 다시 가실 길. 먼 타국의 태평양을 건너서 또 찾아 왔네요.    고사리 나물, 생선 머리 정성껏 말려 제일 예쁜 것으로 사과 세 알, 배 세 알, 약과도 한 접시, 강정도 한 접시… ~아  맞다. 생전에 아버지 즐겨드시던 미역국! 잊지 말고 꼭 챙겨라~~    파아란 하늘에 흰구름도 그대로, 산소에 울창한 나무숲도 그대로인데, 썰렁하니 지나치는  가을 바람에 까만머리 희어진 오빠와 나. 우리들 모습만  변해 있어요.    부모님 봉분 위에 젖은 흙을 올리던 가녀린 13살 소녀의 손도, 시작도 못한 효도에 오열을 터트리던  17살 소년의 어깨도 어느새 눈물과 추억의  세월을 건너왔는데… 이제는 눈물도 말라  주름져가는 얼굴에 거친 볼 비비며 추석오빠 나에게 속삭이네요.      발이 닳고 뼈가 녹아 이 세상 모든것 잊혀진대도 여름 바다 겨울 산 넘고 넘어서 훨~훨~ 날으는 가을바람 되어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또 다음 해에도 늘 그랬듯이 반드시 널 찾아 또 올거야…    아버지, 어머니, 너와 나 등에 정히 모시고 영원한 봄나라에 늘 함께 살자꾸나.  해마다  찾아오는  추석 오빠, 해마다 기다리는 추석 누이 되어, 꼬옥 올 것이라는 기다림의 믿음. 반드시 기다릴 것 이라는 기대의 믿음.  이 두 남매는 올해도 다시 만나 부둥켜 안고 운다. (2020년 10 월1일 추석을 맞으며)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daekim
2020-10-21
아브라함의 생애(2)-하란을 떠나는 아브라함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창 12:4-9)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하란을 떠난 것은 그때까지 자신을 위해 살아온 삶을 뒤로하고 남은 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음을 뜻한다. 자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대원칙을 보여준 위대한 믿음의 결단이었다.   아브라함이 이 같은 선택을 함에 있어서 그의 아내 사라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기를 떠나자고 했을 때 사라가 쉽게 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곳을 떠나 낯설고 위험한 광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칠십오 세의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사라는 남편과 동행했으며, 조카 롯과 그를 섬기던 모든 사람들도 함께 갔다.   그때 아브라함의 일행은 수백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브라함이 북방 연합군에게 잡혀간 조카 롯을 구출할 때 동원한 318명은 모두가 그의 사병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실현 가능성도 없었을 뿐더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의 생전에는 기대할 수 없는 약속을 믿고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세겜의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벧엘 동쪽으로 가서 천막을 치고, 거기서도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한 후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땅에 흉년이 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여 그가 이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찾아온 약속의 땅에서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난 것은 믿음으로 살더라도 고난과 역경으로부터 면제받는 특권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승리한 후 아합 왕으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왕상 29:1-4),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 17) 확인 받으신 후 광야로 내몰려 사탄의 시험을 받은 것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믿는 자들은 뜻밖의 난관에 봉착하게 될지라도 좌절하는 대신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흉년을 맞이하자 하나님께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구하지 않고 애굽으로 들어간다. 그때 아브라함은 훗날 하나님이 그의 손자 야곱에게 가나안의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것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창 46:1-4).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지시할 것도 알았을 리가 없다(마 2:3).   그는 다만 수량이 풍부한 나일 강을 끼고 있는 애굽에는 양식이 있을 것이란 소문만 듣고 그리로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굽으로 향하는 그에게 또 다른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피난민의 신분으로 애굽으로 가는 그였기에 국경에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무사히 국경을 넘는다 하더라고 사라의 뛰어난 미모로 인해 그가 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엄습해 왔다.   그때 사라의 나이는 65세였지만 중년 여인의 관능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며, 당시 애굽 남자들은 희고 부드러운 피부를 지닌 히브리 여자들을 선호했다고 하니 아브라함의 염려가 기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민하던 아브라함은 사라를 그의 동생으로 행세하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사라는 실제로 그의 이복동생이었기 때문에(창 20:12) 그렇게 해도 완전한 거짓은 아니었지만 아내를 애굽 왕의 품에 안기게 함으로 자신의 안전과 영달을 꾀하려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겼고, 기대했던 대로 사라는 왕궁으로 들어가고, 아브라함은 그녀의 오빠로서 대우받으며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애굽 왕 바로에게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다. 뜻밖에 맞이한 재앙의 원인을 알게 된 바로는 많은 재물과 함께 사라를 돌려보내며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애굽을 떠나게 한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애굽으로 간 것은 참으로 잘못한 일이었다. 그가 사라의 미모를 이용해 자신의 안전과 번영까지 원한 것은 죄악이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망각하고, 사라의 거짓 연기에 그의 운명을 맡긴 불신앙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가 한 일은 비겁하고 졸렬하면서도 비인간적인 범죄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이방인인 바로까지 꾸짖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아브라함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며 훈련시켜서 사용하시는 분이심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추하고 부끄러운 죄를 범하고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함을 받아 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을 친아들처럼 양육했고, 하란에서부터 동행한 조카 롯과 묘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 당시 유목민들이 소와 양을 치려면 넓은 초원과 풍족한 물이 있어야 했는데,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들이 늘어나다 보니 서로가 더 넓은 초원과 많은 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가 커지기 전에 해결하기 위해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자며 롯에게 가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라고 한다. 무엇으로 보나 우선권은 그에게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그 권리를 양보한 것이다. 그때 롯은 삼촌의 관용에 감사하며 사양하지 않고 에덴동산 같고, 애굽의 비옥한 땅과 같은 요단강 유역을 택해 그의 가축 떼를 몰고 떠나간다.   탐심으로 인해 아버지 같은 아브라함을 배신한 것이다. 롯의 이 같은 배은망덕한 행위는 하와가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것처럼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운영에 동참할 수 있었던 축복된 기회를 상실하고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슬픈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눈에 보이는 사방의 땅을 모두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주겠으며, 그의 자손이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라 들려주신다. 당연한 그의 권리를 조카에게 양보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며, 그가 하신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2,000년 후에 예수께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라 하신 말씀을 들은 것처럼 실천함으로 몇 백배를 돌려받은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아브라함은 천막을 헤브론의 상수리 숲 근처로 옮기고, 거기에 제단을 쌓았다.   아브라함을 떠난 롯은 죄와 향락의 도시 소돔을 향해 갔다. 그때 사해북방에 산재한 4개 부족국가와 사해남단 5개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북방의 그돌라오멜 동맹군이 소돔 성에 살던 롯과 그의 가족들을 잡아간다.   이를 알게 된 아브라함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318명의 특별부대를 편성한다. 그때 북방동맹군의 군사는 10,000명이 넘었다. 따라서 아무리 잘 훈련되고 충성스러워도 318명의 사병으로 적에게 잡힌 롯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를 하란에서 나오게 하시고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믿고 롯 구출작전을 감행했다.   그가 있던 헤브론에서 200키로를 행군하여 단에 도달한 아브라함은 야간 기습작전으로 적진에 돌입했고, 패하여 도주하는 적을 끝까지 추격하여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해냈다. 이 싸움은 시종일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싸워주신 전쟁이었다. 승전한 아브라함을 맞이하는 살렘 왕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 말한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기드온과 그의 300 용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브라함의 318명의 결사대에 대하여 아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318명의 사병으로 10,000 명의 정규군을 격파한 장군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아브라함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ybkim
2020-10-21
정직한 국민에게는 희망이 있다

  100년 전 도산 안창호(1879-1938) 선생은 민족개조론을 주장하며 교육으로 훌륭한 인재를 많이 기르고 또 인성교육을 통해 정직하고 정의로운 국민성으로 변화시키는 길만이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고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찾는 길이라고 외쳤다.   이제 100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은 OECD 34개 국가 중에서 문맹률이 최저이며 대학교육진학률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교육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장했던 민족개조론으로 정직하고 정의롭고 의로운 국민성으로 변해야 한다고 애타게 외쳤던 한국 국민성은 100년이 지났지만 변화된 것이 없는 것 같다.   해방 후 75년 동안 끊임없이 듣고 외쳤던 부정부패비리 청산은 오늘날까지도 국민의 분노와 통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직도 부정직하고 정의롭지 못한 한국 국민성 때문이 아닌가? 반세기전 한국 국민 1인당 소득은 겨우 $70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였을 때에도 부정부패 비리에 대한 분노와 분통의 소리는 들려왔지만, 2020년 현재 한국 국민소득이 약 $34000로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되어 풍요롭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부정 부패 비리에 대한 한국국민의 원성은 진절머리 나도록 들려온다.   그래서 한국은 OECD 34개 국가 중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가 아닌가? 2018년에는 26만 2815건의 사기사건 등이 발생하였고, 2019년에는 30만3348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매년 25만건 이상의 각종 사기사건이 발생하고 하루 평균668건이 발생하는 세계 제일의 "사기꾼 나라"가 한국이 아닌가 싶어 무척 부끄럽게 생각된다. 만약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오늘의 부정부패 비리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분노하고 통탄할 것인가?   건국 후 역대정부에서 현 정부까지 모든 대통령후보들이 국민에게 선거공약으로 약속했던 것처럼,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도 대선에서 만약 대통령에 당선되면 인사5대 원칙인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에 관련된 인사는 공직에서 절대적으로 배제하며 어떤 경우든 이5대원칙은 반드시 지키며 실천하겠다고 국민에게 공약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부 고위인사 후보로 지명된 이들 대부분 선거공약 5대 원칙에서 자유로운 공직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부동산투기로 다주택을 소유한 자들 그리고 세금탈루와 위장전입 그리고 석, 박사 논문의 표절 등에서 깨끗한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박사논문을 쓰려면 적어도 4-5년 동안 관련된 서적들을 150권-200권 이상 읽어야 쓸 수 있는 것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남이 수년 동안 연구하고 쓴 논문을 표절해 학위를 받은 경우는 너무나 뻔뻔한 사기행위가 아닌가?   이런 부정직하고 비양심적인 행위는 역대정부에서도 항상 있었던 현상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취득한 화려한 학력 덕분으로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 또는 정부 고위공직자가 되는 한국정치인들이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보인다.   국민에게 절대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까지도 이처럼 도덕과 윤리가 퇴폐되어 오직 사리사욕으로 병든 이기주의자가 되고 기회주의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100년 전에 안창호 선생이 정직성과 진실성 그리고 정의감이 부족한 한국 국민성은 반드시 새롭게 개조되고 변화되지 않으면 절대로 한국 민족에게는 희망과 비전을 볼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내가 54년 동안 살고 있는 캐나다 한인동포사회 역시 이민초기부터 불거졌던 크고 작은 사기사건으로 한인동포사회에 큰 상처를 주기도 했으며, 동포들을 부끄럽게 만든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이처럼 빈번히 일어나는 각종 사기사건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상실된 한국인의 정직성과 신뢰성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동포들도 도산 안창호 선생이 100년 전에 애타게 외쳤던 것처럼 정직성과 신뢰성 그리고 정의롭고 의로운 국민성으로 개혁하고 변화하지 못하면 100년 200년 300년이 지나도 큰 희망과 비전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염려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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