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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Hwanghyunsoo
2021-05-06
세상을 떠난 ‘칸초네의 여왕’ 밀바

  이민을 오기 전, 유럽 국가들은 왠지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울 거라고 느꼈다. 그 생각은 여기에 살며 조금씩 바뀌어, “국가마다 아이덴티티가 있고 그 차이가 또 다른 ‘급’을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 캐나다도 다양한 이민자들이 있지만 여전히 주도권은 유럽 출신 백인, 그 중에서도 먼저 정착한 프랑스와 영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이탈리아계도 아직 주류는 아니지만, 거기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탈리아 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이 영화 <대부>다. <대부>는 마피아의 범죄를 잔인하게 비추지만, 그들의 가정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대부’는 마피아 조직원에게는 ‘절대 군주’이어도 가족들에게는 그저 자상한 아버지일 뿐이다. 이 때문에 마피아의 조직범죄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평도 있지만, 어쨌든 이탈리안의 한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영화에서는 마피아가 같은 민족을 도와주는 장면이 가끔 나오는데, 특히 ‘마이웨이(My Way)’를 부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뒤를 봐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어찌 보면 시나트라의 삶도 <마이웨이> 노래 가사처럼 ‘모든 길을 다 가봤고’ 많은 것을 겪는다. 그의 명성 뒤에는 마피아 폭력이 따라다녔다. 이탈리아는 음악의 나라이기도 하다. 이탈리안 만큼 소리 높여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경음악 분야에서는 기악보다 노래가 발달되었다. 경음악으로 된 노래를 보통 칸초네라 부르는데, 대중가요인 칸초네(Canzone)는 한국인들도 좋아하는 장르이다. 밝고 서정적이어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선율 구성도 우리 가요와 비슷해 친밀하다. 칸초네의 대표적인 노래가 ‘오! 솔레미오(O sole mio)’다.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를 태양에 비유한 멋진 곡이다. 그리고 아마 한번쯤 불러 보았을 ‘산타루치아(Santa Lucia)’도 칸초네인데, 어부들이 일을 하거나 축제 때 부르는 노래다. 내가 1988년, 업무 차 이탈리아에 갔을 때 가이드가 들려준 이야기다. “한국에서 성악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이 모텔에서 첫날밤 새벽에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어디선가 ‘산타루치아’ 노래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청소부 아저씨만 있었다. ‘누가 아침부터 발성 연습을 하나’하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청소부 밖에 안 보였다. 그런데 잠시 뒤, 그가 빗자루를 쓸며 “산타~루치아!”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성악 공부를 하러 온 자기보다 훨씬 잘 부르는 것이다. 너무나 기가 죽은 그는 성악 대신 패션 공부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우스개 소리지만, 그만큼 칸초네가 대중화되어 있고 누구나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칸초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산레모 가요제(Festival della Cazone Italiana)>다. 산레모(Sanremo)는 프랑스 국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관광도시다. 프랑스 <칸(Cannes)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니스(Nice)와도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5년이 지나도록 관광업이 회복되지 않자 산레모의 똑똑한 지도층들이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사흘 동안, 가요제를 열기로 한다. 1951년 막을 올린 가요제는 처음에는 라디오로 이탈리아에만 중계됐으나, 1955년 TV 중계가 시작되고 마지막 날 결선이 인접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에까지 생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말에는 우리나라에도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많은 가수들이 원곡 또는 번안곡으로 그 노래들을 불렀다. ‘카사 비안카(Casa Bianca/언덕 위의 하얀 집)’를 비롯해 ‘논 호 레타(Non ho l' eta/나이도 어린데)’, ‘쿠안도 쿠안도 쿠안도(Quando, quando, quando/언제 언제 언제인지)’, ‘케 세라(Que sera/누구일까)’ 등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다. 한국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불린 펄시스터즈의 ‘하얀 집’이나 조용필의 ‘케 세라’, 이용복의 ‘어머니 왜 나를 나셨나요’ 등을 당시 음악 프로그램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산레모 가요제>하면 생각나는 가수가 2주 전에 세상을 떠난 밀바(Milva)다. 여든한 살, 스무 살에 가수의 길로 들어서 61년 동안 가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칸초네의 여왕이다. 밀바는 1959년 이탈리아 국영방송이 주최한 <신인 발굴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차지한다. 무려 7천6백 명 가운데 1위였다. 밀바의 전설이 시작된다. 1961년 <산레모 가요제>에 출전해 ‘서랍 속의 바다’란 노래로 3위에 입상한다. 그 해 비평가들은 그녀를 ‘올해의 가수’로 선정하면서 칸초네 스타의 탄생을 축하했다. 이후 밀바는 아홉 차례나 <산레모 가요제>에 출전해 ‘칸초네의 여왕’이란 이름까지 얻게 된다. 1966년 <산레모 가요제>에 출전해 입상한 ‘네수노 디 보이(Nessuno di Voi/당신들 누구 하나)’는 한국에서는 ‘서글픈 사랑’이란 노래로 알려진다. 이즈음에 부른 ‘아리아 디 페스타(Aria di Festa/축제의 노래)’도 한국에 널리 알려진 노래다. 윤형주, 송창식으로 구성된 트윈폴리오가 ‘축제의 밤’이란 번안가요로 널리 유행시켰다. ‘리멘시타(L’immensita)’는 다른 가수가 불러 산레모에서 입상한 노래지만, 밀바가 커버한 곡이 더 유명해지면서 그녀의 노래가 됐다. 이 노래도 이미배가 ‘눈물 속에 핀 꽃’이란 번안가요로 불렀다.       밀바는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영화음악의 거장인 엔리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프란시스 레이(Francis Lai) 등과 협업해 앨범을 내기도 했다. 1977년에는 <뮤지컬 에비타>에 삽입된 엔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이탈리아 버전을 내놓는다. 마돈나의 노래가 나오기 20년 전이다. 밀바는 탱고의 대표곡 ‘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를 자주 불렀다. 1916년 우루과이 로드리게스가 만든 곡이지만 세계로 널리 퍼져 많은 영화의 ‘가장행렬’이나 ‘축제’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는 레전드 노래다. 그녀는 한국을 비교적 자주 찾았던 지한파 가수이기도 하다. 1972년,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 앙코르로 한국 가곡 ‘보리밭’을 우리말로 불러 환호를 받았다.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갔다. ‘칸초네의 여왕’ 밀바는 아날로그 세대에게 이탈리아의 이미지로 오래 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녀가 떠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어쿠스틱한 연주에 녹여진 그녀의 노래는 언제나 다시 꺼내 들을 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지 싶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youngho2017
2021-05-06
WWI 배경 영화 (VII)-'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1)

   무려 3시간 20분의 대서사극인 '닥터 지바고(1965)'를 날 잡아 보는 것은 컴퓨터 그래픽(CG) 기술도 없던 반 세기 전의 아날로그 시대로 떠나는 긴 시간여행이었다.    아마 네다섯 번째 보는 것 같은데도 눈덮인 대평원 속에 화려했던 제정(帝政) 러시아 말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귀족과 민중이 대립각을 세우던 혁명의 시기까지 거대한 역사의 시간 속에 내던져진 한 순수한 영혼의 행적을 그린 대서사극은 지금의 감성으로 봐도 감동의 울림이 있다. 이것이 아날로그 고전 영화의 진수가 아닌가 싶다. [註: 그런데 이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 같이 70mm 수퍼 파나비전이 아니라 실제는 스탠더드 35mm 파나비전으로 촬영된 것이다.]    그리고 영국 출신 거장 데이비드 린(David Lean, 1908~1991) 감독과 바늘에 실 가듯 호흡을 같이 한 프랑스 출신 작곡가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 1924~2009)가 작곡, 러시아 전통민속악기 발랄라이카로 연주한 '라라의 주제곡(Lara's Theme)'은 여전히 아름답고 달콤하다. 그래서 명작을 더욱 명작답게 만든 것이리라. 이 악기는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중요한 장면에 몇 번 등장한다. [註: '라라의 테마'는 영화 개봉 후, 'Somewhere My Love'라는 제목으로 레이 코니프 악단(Ray Coniff & The Singers)을 비롯하여 앤디 윌리암스 등 수많은 유명 가수들이 부른 인기 팝송이 되기도 하였다.]    1965년 MGM사 배급. 제작 카를로 폰티. 러닝타임 197분. 원작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Leonidovich Pasternak, 1890~1960)의 동명의 유일한 장편소설. 그러나 원작 소설은 정작 소련에서는 출판되지 못했으며, 1957년 이탈리아에서 발간 되자마자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 이듬해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었으나 소련 당국의 거부로 인해 원작자인 파스테르나크는 수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 '닥터 지바고'는 소비에트 연방의 리더이자 소련 공산당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에 힘입어 1988년에서야 출판이 허용되었고, 다음해인 1989년 파스테르나크의 장남이자 문학연구가인 예프게니 파스테르나크가 노벨상을 대리 수상했다. [註: 예프게니는 "아버지는 이 상을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 때문에 괜한 고통만 안겨주었다."며 의미심장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러시아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것은 1994년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제작 후 13년이나 지난 1978년에 개봉되었다.    작품의 배경은 제정 러시아 말기인 1912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1917년 러시아 혁명(Russian Revolution)과 오랜 내전을 거쳐 1925년에 이르는 10여 년의 격동의 시기이다. 러시아 제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린 서민들이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빵을 요구하며 일으킨 1917년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세운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폐위되어 제정 러시아는 종지부를 찍는다.    같은 해 10월 두 번째 혁명이 일어난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분열하여 형성된 좌파 세력인 볼셰비키(다수파)에 의해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에 기반한 20세기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었다. 하지만 10월 혁명의 진정한 주체는 레닌 등의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아닌 민중들이었다.    이 러시아 혁명에 뒤이어 러시아 내전(Russian Civil War), 즉 레닌과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가 주도하던 혁명파 '적군(赤軍, 좌파)'과 서방국가들이 지원하던 반혁명파 '백군(白軍, 우파)'이 싸우던, 이른바 '적백내전(赤白內戰)'이 일어나, 결국 1922년 사상 최초로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즉 소련(蘇聯)이 탄생한다. [註: 필자는 여기서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와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연거푸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조선무장독립군은 일본군의 대대적 토벌로 인해 전략상 러시아령으로 이동하여 밀산(密山)에서 독립군을 통합 재편성, 약 3,500명 규모의 새로운 대한독립군단을 탄생시켰다. 그때 적색군의 감언이설에 속아 그들을 도와 내전에 참전하여 결국 적군이 승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적군은 승리 후 1921년 6월27일 독립군을 연해주 자유시에 집결하도록 한 후 무장을 해제시키려 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독립군을 무차별 공격함으로써 무수한 사상자를 낸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야기하였다. 이로 인해 연해주 지방의 조선독립군 세력은 모두 와해되는 참극이 일어났던 것이다.]    동토의 제국 러시아는 역사상 아무도 제압하지 못한 땅이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의 막강한 군대조차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러시아도 거대한 민중의 힘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정권은 배요, 국민과 민심은 물이라고 한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에 과거의 유산들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다. 이 격동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개인의 존재와 삶과 사랑의 이야기가 영화 전편을 통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영화는 약 4분 여의 서곡으로 시작한다. 차이콥스키의 '1812'의 소절과 러시아풍의 행진곡 및 라라의 주제곡 등이 절묘하게 변조돼 흐른다. [註: 1950~60년대에 서곡을 삽입하는 것은 하나의 정형처럼 유행했다. 이 영화와 '벤허(1959)', '스파르타쿠스(1960)',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등 대서사극에는 중간휴게시간도 있다.]    얘기의 서사 구조는 1940년대 말~1950년대 초, 소련첩보수사기관(KGB) 중장 예프그라프 지바고(알렉 기네스)가 그의 이복 동생인 유리 지바고와 라리싸(라라) 안티포바 사이에서 난 딸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프그라프는 수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나이 어린 타냐 코마로바(리타 터싱햄)가 조카딸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그녀에게 유리의 시집(詩集)을 보여주며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과거회상 형식으로 들려준다. (다음 호에 계속)   ▲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1965)' 영화포스터   ▲ 예프그라프 장군(알렉 기네스)이 타냐 코마로바(리타 터싱햄)가 조카딸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이복 동생 유리의 시집을 보여주며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면서 영화는 회상형식으로 전개된다.   ▲ 유리 어머니 장례식 장면 - 가운데 왼편이 8살의 유리 지바고(타렉 샤리프), 바로 우측은 알렉산데르(랄프 리차드슨), 그 옆에 토냐가 어머니 안나(시옵한 멕켄나)의 손을 붙잡고 있다. 유리는 이 그로메코 가(家)에 입양된다.    ▲ 라라(줄리 크리스티, 왼쪽)는 어머니(오른쪽)가 독감에 걸려 빅토르 코마로프스키(로드 스타이거)와 함께 사교계 연회장에 대신 참석한다.    ▲ 1912년 겨울밤, 크렘린궁 앞에서 혁명가 파샤 안티포프가 이끄는 시위대가 코사크 기병대에게 쫓기는 모습. 이 살육 현장을 지켜보던 유리 지바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chungheesoo
2021-05-06
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13)

  (지난 호에 이어)   4.14  1차 세계대전 및 영불갈등 제 1차 세계대전도 양 민족간의 분쟁을 심화시켰다. 1914년 8월 4일에 영국은 독일에 전쟁 선포를 했다. 연방정부는 우선 지원병을 모집해야 했다. 물론 퀘벡 주민은 반대했다. 당시 인기 언론인인 Henri Bourassa 는 이러한 말을 했다. “Au nom de la religion, de la liberte, de la fidelite au drapeau britannique, on abjure les Canadiens francais d’aller combattre les Prussiens d’Europe. Laisserons-nous les Prusiens d’Ontario imposer en maitre leur domination en plein cœur de la Confederation canadienne a l’abri du drapeau et des institutions britanniques.’’ (Lacoursiere, p.140) (종교, 자유 그리고 영국 국기에 대한 충성 때문에 우리 불어권 캐나다인을 구라파 독일군과 싸우게 한다. 우리가 과연 온타리오 주가 연방체제 안에서 영국국기와 영국 제도 뒤에 숨어 우리의 주인같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도 되느냐.) 지원병 모집을 위해 지원병에게 일당 $1.10를 주고 부인에게는 월 $20의 수당을 주었다. 그러나 지원병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은 과열되고 군력은 더욱 필요하여 1917년 8월 28일 Borden 연방 수상은 징병법을 통과 시켰다. 20세부터 45세의 남자는 징병 대상이었다. 1917년 퀘벡 정부 총선에서는 징병을 지지했던 보수당은 불과 2명의 의원을 선발했고, 자유당은 62표나 얻었다. 징병을 반대한 이유로 연방정부 내각에는 불어 캐나다가 완전히 배제 되었기 때문이다.   4.15 Francoeur의 퀘벡 독립 주장 징병법 때문에 불어권 캐나다인의 영어권 캐나다에 대한 감정은 더욱 악화되어 퀘벡 독립까지 거론 되었다. 1917년 12월 21일 퀘벡 국회 의원 Joseph-Napoleon Francoeur 는 다음과 같이 퀘벡 독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Que cette Chambre est d’avis que la Province du Quebec serait disposea accepter la rupture du pacte federatif de 1867, si dans les autres provinces croit qu’elle est obstacle a l’union, au progres et au developpement du Canada’’ Lacoursiere p.143). (만약 타 주에서 퀘벡 주 때문에 단합, 번영 및 발전에 장해가 된다면 퀘벡 주는 1867년의 연방조약에서 탈퇴 하겠다는 것이 본 의회의 입장이다.) 이 결의안은 1818년 1월 23일에 부결되었다. 퀘벡이 연방제에서 분리되면 Montreal은 별도의 공화국을 세우자는 운동도 있었다. 징병 기피자를 수사하는 바람에 3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에 막을 내렸다. 1920년 7월 9일 Louis-Alexandre Taschereau 가 퀘벡 수상이 되고, 그는 역사상 최초로 사회 복지지원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구체적으로 병원 비용을 다음과 같이 부담하기로 했다. 주정부(33%), 시정부(33%), 자선사업 단체(33%). 흥미로운 것은 전후의 경제 부흥에 힘입어 자동차 수가 급증했다. 퀘벡주의 자동차수는 1920년의 36,000 대에서 1930년의 140,800 대로 늘어났다. 한편 전기 사용자수는 1920년의 248,000 가구에서 1936년의 363,000 가구로 증가 했다. 주목할 또 하나의 사실은 Lionel Groulx 신부의 입장이다. 이는 퀘벡 국가주의 운동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1920년 12월에 L’Action 이라는 잡지에 이러한 글을 올렸다. “Une histoire longue de trois siecles, la possession presque entiere du sol par une race determinee, l’empreinte profonde que cette race y a gravee par ses meurs et ses institutions originales, le statut special qu’elle s’est reserve dans toutes les institutions politiques depuis 1774, ont fait du Quebec un Etat francais qu’il faut reconnaitre en theorie comme en fait. C’est cette verite qu’il faut replacer en haut pour qu’elle y gouverne chez nous l’ordre economique, comme on admet spontanement qu’elle doive gouverner les autres fonctions de notre vie’’ (Lacoursiere 145) (우리 민족은 지난 300 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았고 생활양식 및 제반 제도를 통해 깊은 흔적을 남기고 1774년 후 모든 정치적 제도 속에 우리의 특수한 지위를 보전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이론적으로 혹은 실제로 우리를 독립적 나라로 인정해야 한다. 이 진리가 우리경제 및 모든 분야에서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budongsancanada
2021-05-06
토론토 주택시장 조정국면 들어가나…거래-가격 동반 하락

  TRREB 자료 4월 거래량 1만3,663채로 월간 13%↓…가격도 1% 내려가       광역토론토(GTA)의 주택시장 열기가 한풀 꺾였다. 지난달 거래 및 가격이 전달보다 하락한 것.    토론토부동산위원회(TRREB)에 따르면 지난 4월 GTA 주택거래는 1만3,663 채로 3월보다 13% 적었다. 또한 평균가격은 109만992 달러로 전월 대비 1% 하락했다.    물론 팬데믹으로 봉쇄됐던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거래의 경우 362%, 가격은 33% 뛰었지만 이는 의미있는 수치로 보기 어렵다.       이 기간 신규 매물도 2만825채로 전달에 비해 8.4% 감소했고, 작년 4월(6,180채)보다는 237% 증가했다.      이와 관련 업계는 "일부 수요는 이미 충족됐다. 수요가 정점에 이른 것 같다. 많은 주택 소유자가 높은 가격을 이용하려고 매물로 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TRREB은 “지난 3월에는 새 매물이 넘쳐도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지만, 4월에는 경쟁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광역토론토 인구 내에서 잠재적인 바이어 풀(pool)을 고갈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과열된 주택시장이 완화되기 시작한 또 다른 신호도 나타났다. 업계는 “오퍼 경쟁이 확연히 줄었고, 특정 외곽지역은 오퍼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한 달 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 수개월간 주택가격 급등과 거래 급증에 시장을 진정시킬 조치를 요구해 왔다. 이에 연방정부는 더 엄격한 모기지 대출과 외국인 빈집세를 검토하고 있으나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여겨진다.    TRREB은 “주택가격 상승 속도가 앞으로 완만할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이 가라앉을 때 국경이 열릴 것이고, 캐나다가 이민 목표를 늘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세에 무게가 실린다”고 주장했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leed2017
2021-05-06
성군(聖君) 정조

   나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조선왕 27명 중에서 제4대 세종대왕과 함께 성군(聖君)의 칭호가 마땅할 만큼 치세(治世)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그의 할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같혀 여드레 만에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듯이 정조 역시 세자 시절에는 물론, 임금이 되고 나서도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그를 죽이려는 무리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임금 자리에 오르자 천추(千秋)의 한(恨)을 품고 죽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정조의 처삼촌 홍일한과 정후겸 등을 유배보내서 사사(賜死) 시켰습니다. 장인 홍봉한도 처벌 대상이었으나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를 생각해서 차마 리스트에 올리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본 11살의 어린 정조, 할아버지 팔에 매달려 살려 달라고 빌었던 한(恨)과 원(怨)을 품고 자란 정조는 아무에게도 그 울분을 털어놓지 못하고 묵묵히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성이 어질고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노론에 밀려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울분 속에 지내던 서얼 출신의 대단한 실력을 가진 선비들, 이를테면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같은 희대의 천재들을 기용해 주는 한편, 이가환, 정약용 등 실학사상에 물이 든 개혁파 선비들에게 날개를 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선비들은 정조가 세운 규장각이라는 왕실 도서관이자 정책수립 기관을 드나들며 책 읽고 공부하며 정조 치세에 도움이 될 정책을 활발하게 토론, 건의했습니다. 바야흐로 조선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이 불어오는듯 했습니다. 짧으나마 조선에 문예부흥이 온 것이지요.  정조는 경서와 역사에 무척 밝은 면학(勉學) 군주였지만 소설은 한 번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보기에는 소설은 문장이 천박하고 촌스러워서 선비들은 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삼국지연의’ ‘수허전’ ‘홍루몽’ 따위의 중국에서 들어온 소설은 읽기도 쉬운데다가 재미가 있어서 많은 선비들이 경서처럼 드러내놓고 읽지는 않았지만 돌려가며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조는 소설에 담간 남녀 사랑 이야기(얼마나 재미있고 달콤합니까!), 사회 비판 정신은 자기도 모르게 빨려들어갈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소설 읽는 것을 금지하는 소설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다시는 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써내라고 요구하고 신하들은 그 말에 복종하고 제각기 반성문을 써냈습니다.  정조가 간지 15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그 땅에서 박정희라는 무인이 총칼로 정권을 빼앗아 군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의 철권/고문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곧 그는 좌익사상에 관한 책들을 금지하였습니다. 그 방면의 책을 읽거나 가방에 넣고만 다녀도 불온서적을 소지했다고 잡아갔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다가 잡혀가는 날에는 병신이 되도록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하기가 일쑤이지요.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도 잡혀가서 실컷 두드려 맞고 병신이 되어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소설을 읽다가 정조에게 걸려든 선비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안동김씨의 김조순이었습니다. 김조순은 김창집의 아들로 젊어서부터 정조의 관심을 듬뿍 받아온 선비입니다. 나중에는 두 사람이 사돈관계로 발전해 가지요. 김조순의 딸이 정조의 며느리(순조의 본처)가 됩니다.  안동김씨는 정조와 인연으로 온 나라를 휘어잡은 세도정치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정조가 죽은 후 시작되어 60년을 이어갑니다.  김조순은 분별력이 있고 은인자중하는 선비라 그가 살았을 때 세도정치가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들 김좌근, 손자 김병기로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대를 물리며 이어집니다.  나는 가끔 정조의 소설 금지령을 들으면 박정희의 불온문서 금지령이 생각납니다. 정조는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을 많이 읽고 공맹(孔孟) 사상의 사고력도 매우 높은 지식층 임금이었고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은 무인(武人)입니다. 정조는 서학(西學)의 접근을 속으로 걱정했을 것이고 박정희는 공산주의가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정조에게 소설을 읽다가 들키면 반성문을 쓰고 다시는 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서약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불온문서를 가지고 있다가 박정희에게 걸리면 감옥살이 몇 주에 물고문, 전기고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다 훗날에 생각해 보고 “그렇게 엄하게 못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내가 왜 그랬나?” 후회가 될 것입니다. 읽지 말라면 더 읽고 싶고 부르지 말라면 더 부르고 싶은 저항의 심리가 우리 민족에게는 지하수 처럼 도도하게 흐른다는 것을 아십니까?  나라는 집권자가 의도하는 대로 지휘봉을 들고 이리저리 가라고 안해도 저절로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0. 8)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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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토론토 다운타운 콘도 시장 반등…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

  1분기 새 콘도 2,886 유닛 분양, 2% 증가…평방피트당 가격도 1,416달러 기록 어바네이션 자료, 광역토론토 총 5,385 유닛 분양…1,261달러(8.8%↑)로 신기록      한동안 부진했던 토론토 다운타운의 콘도 시장이 반등했다. 낮은 모기지 이자율과 새로운 낙관론, 외곽 지역의 가격상승 부담 등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최근 어바네이션의 콘도미니엄 시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구 토론토시에서 2,886 유닛의 새 콘도가 분양됐다. 이는 작년 1분기의 2,829 유닛을 넘어선 것이다.    광역토론토(GTA) 전체에선 총5,385 유닛의 새 콘도가 분양됐으며, 이는 작년 팬데믹이 본격화하기 전인 2020년 1분기(5,593 유닛)보다 4%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10년 평균치인 4,924 유닛은 초과했다.    이에 업계는 코로나에 따른 외곽 905지역의 시장 지배력이 다시 토론토 다운타운으로 돌아오는 신호에 주목했다.    어바네이션에 따르면 1분기에 출시된 신규 콘도의 76%가 분양에 성공해 지난 2017년의 시장 최고치 이후 가장 높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GTA에서 1분기에 출시된 유닛의 평균 분양가는 평방피트당 1,261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 1 분기(1,159달러)에 비해 8.8% 상승이다.        토론토 다운타운에서의 평방피트당 분양가는 1,416달러로 지난해 동기(1,343달러)보다 5.7% 올랐다.    한편, 이 기간 GTA에서 판매되지 않은 잔량은 연환산 1만1,956 유닛으로 작년 동기대비 11% 감소하며 지난 10분기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들의 출시 가격은 평방피트당 1,178달러로 1년 전보다 7.7% 높았다.    어바네이션은 “이 기간 GTA의 기존 콘도 아파트 판매가 전년 대비 74% 급증하면서 신규 콘도 분양도 가열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올해 1분기 구 토론토시의 기존 유닛 판매가격은 평방피트당 1,018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4.7% 하락했지만, 2020년 4분기보다는 6% 올랐다.    향후 공급 측면에서 1분기 GTA 전체의 건설 중인 콘도는 총 8만3,497 유닛으로 2020년 1분기의 7만6,145 유닛보다 10% 증가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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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코로나로 집수리 관심 크게 증가…목재가격 급등, 비용 다시 따져봐야

  캐나다주택건설협회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낮아지려면 2022년 말까지 걸릴 것”      팬데믹 기간 주택 개조 및 수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으나 DIY(do-it-yourself)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비용을 따져보는 것이 좋다. 최근 목재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현재 데크를 수리하고 있는 딘 하논은 “썩은 보드만 교체하고 있는데 목재 비용이 약 1,100달러 들어간다. 2년 전에는 500달러면 가능했다. 코로나 이전에 50~60달러였던 합판이 이제 200달러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지하실이나 차고를 개조하려면 합판 가격이 다른 모든 재료를 합친 것보다 비쌀 것이다. 올해 목재가격은 가장 비싼 수준이면서도 품질은 형편없다. 수액이 나오거나 물을 먹어 무거운 것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알투스 그룹에 따르면 지난 1, 2월 주택 개조를 위한 지출은 작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지난해 전반적으로는 2분기의 팬데믹 봉쇄로 실제 754억 달러에 그쳐 2019년(780억 달러)에 비해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증가세를 보여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팬데믹 기간 상승한 목재 가격은 올해 상반기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후 하락하더라도 캐나다주택건설협회(CHBA)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수준까지 낮아지는 데는 2022년 말이나 가능하다.    집을 개조해 팔려는 캐시 허버트는 “표준 프레임 작업을 위한 목재 비용이 작년에 7,000달러에서 현재 1만5,000달러로 상승했다. 내 데크의 경우는 적어도 두 배 비싸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는 압축 목재가 부족하여 사전 주문을 한 다음에 필요한 재료를 얻으려고 여러 대형 매장을 찾아 다녀야 했다. 그 당시는 가격보다 공급과 수요가 문제였다. 모두 집에 갇혀 데크를 만들고 있었고, 그 때부터 상황이 변해갔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개입해 목재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자재비용 상승이 광역토론토 집값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허버트는 “지난 2~6주 동안 거의 모든 트림 업체, 바닥재 및 창문 업체 등 기본적으로 목재를 사용하는 곳에서 20% 또는 30% 올랐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김효태 부장|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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