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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jimmy42
2021-01-26
How COVID-19 has changed daily life a year after Canada's first case.

    .   How COVID-19 has changed daily life a year after   Canada's first case..   By March, health officials began implementing measures that would fundamentally alter how many Canadians live An online survey found that over 90% of the 1,500 people polled said COVID-19 had changed their lives People who were already economically and socially vulnerable appear to have been among the most deeply affected       On Jan. 25, 2020, Canadians were still living their lives like they always had: commuting to the office, visiting friends, dining out, hugging loved ones, vacationing. But the announcement that day of Canada’s first COVID-19 case set in motion a chain of events that would soon change everything. By March, with cases climbing, health officials began implementing a series of measures that would fundamentally alter how many Canadians live. Lockdowns and calls for physical distancing led to companies shifting to work from home, travel restrictions, mask-wearing rules, cancellation of major events, and video meetings replacing in-person interactions as people were asked to avoid seeing anyone, even loved ones. Jack Jedwab, the president of the Association for Canadian Studies, says the biggest change to Canadians’ daily lives has been the isolation from friends, family and co-workers. “I think at the root of a lot of that change is these limits on our mobility, which take different forms, whether it’s interacting with family and friends, or seeing people that we’re accustomed to seeing in our daily lives in person as opposed to on screens,” he said.     An online survey conducted for Jedwab’s group in September found that over 90 per cent of the 1,500 people polled said COVID-19 had changed their lives, with most citing the inability to see family and friends as the biggest factors. While few Canadians have been untouched by the pandemic, Jedwab says women, newcomers to Canada and people who were already economically and socially vulnerable appear to have been among the most deeply affected, particularly by job losses. Here’s a look at how COVID-19 has changed daily life for some Canadians of different groups: Seniors For Bill VanGorder, a retired 78-year-old from Halifax, the pandemic put a temporary halt on his active social life and his favourite pastimes of volunteering in the local theatre and music scenes. “Theatre people, as you may know, are people who love to hug, and not being able to hug in these times probably has been one of the most difficult things,” he said in a phone interview. He considers himself lucky, because at least he and his wife Esther have each other, unlike many of his single friends who are completely isolated. Many older people, who are more at risk of severe complications from COVID-19, are struggling to stay connected with family or finding people to help them with household tasks. VanGorder, who works with the Canadi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also believes unclear government messaging, particularly on when older adults will get access to the vaccine, is “creating huge anxiety and mistrust in the system,” among already-nervous seniors. But while the pandemic has been hard, he says there have also been silver linings. He and many of his friends have been learning to use platforms such as Zoom and FaceTime, which help seniors stay in touch with relatives and connect with their communities. “We think the positive thing is that, of course, this knowledge will continue after COVID and will be a real step forward, so that older adults can feel more involved in everything that’s going on around them,” he said. The first thing he’ll do when things get back to normal is to hug his grandchildren and theatre friends, he said. — University students As classes have moved online, many students have had to adapt to living and studying in small spaces and being isolated from friends and campus life at a stage when forging lifelong friendships and social networks can be crucial. Small living quarters, the inability to travel home, financial fears and uncertainties about the job market have contributed to a “greater sense of isolation” for many students, according to Bryn de Chastelain, an Ontario resident studying at St. Mary’s University in Halifax and the chair of the Canadian Alliance of Student Associations. While he believes schools have done their best to support students, de Chastelain says many students have seen their mental health suffer. “A number of students are really struggling with having to learn from home and learn online, and I think that a number of strategies that students are used to taking up are very difficult to replicate in the online environment,” he said. — Parents Schools across the country were shut down for several months in the spring, ushering in a challenging time for parents who were suddenly forced to juggle full-time child care, work and keeping their families safe. The reopening of schools in the fall brought different challenges depending on each province’s COVID-19 situation and approach. In Ontario, some parents opted for full-time online learning, while others were forced into it when Premier Doug Ford chose to extend the winter break. In Quebec, which doesn’t allow a remote option for most students, some reluctant parents had no choice but to send their children back to class. “I think uncertainty, not only for kids but for everything — work, life relationships and everything — that has certainly been the theme of COVID,” said Doug Liberman, a Montreal-area father of two. Liberman said the biggest challenge has been trying to balance the health and safety of his family with keeping his food manufacturing business going and maintaining a sense of normalcy for his two girls, ages 10 and 12. For his family, that has meant trying to spend time outside but also accepting more screen time, and ultimately, taking things day-by-day. “I certainly think that we certainly don’t have the answer, and I think we’ve done as best as we could, like everybody else has,” he said. .

Hwanghyunsoo
jny0801
2021-01-26
한탕한다는 아빠 수상해요” 美 의회 난입범, 아들 신고로 잡혔다.

  한탕한다는 아빠 수상해요” 美 의회 난입범,   아들 신고로 잡혔다.   이달 초 미국 의사당 난입·폭력 시위에 가담한 남성이 10대 아들의 신고로 체포됐다.     잭슨 레피트. /폭스4 25일(현지 시각) 폭스4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FBI는 의사당에 불법 침입해 의사진행을 방해한 혐의로 가이 레피트(48)를 지난 16일 텍사스주(州) 와일리의 자택에서 검거했다. 아들 잭슨 레피트(18)의 신고가 결정적인 제보가 됐다. 잭슨은 의사당 난입 사태가 있기 몇 주 전 이미 아버지의 우범 가능성을 FBI에 제보했다. 그는 “아버지는 한탕 할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진짜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아서 FBI에 제보했다”고 했다. 잭슨은 사건 전날 워싱턴DC에 갈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고 한다. 그는 사건 당일 뉴스를 통해 시위대 속 아버지를 발견했다. 전투 조끼 위에 파란 재킷을 입고, 카메라가 달린 것으로 보이는 검은 헬멧을 쓰고 있었다.     6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의회 난입·폭력 시위에 참가한 가이 레피트. /폭스뉴스 아버지 가이는 의사당 난입 사태가 있고 이틀 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범행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서 잭슨에게 “네가 경찰에 신고한다면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배신자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 것”이라고 위협했다. 가이의 부인은 검거 후 FBI에 그가 극우 민병대인 ‘쓰리 퍼센터’의 일원이었다고 진술했다. 그의 집에서는 AR-15 소총과 권총 등이 발견됐다. 잭슨은 “아버지를 신고하는 것이 우리 가족뿐 아니라 아버지 당신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게 내 윤리적 잣대였다”고 말했다. 잭슨은 자신의 신고 사실을 아버지가 알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아버지가 알게 되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목숨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다시 돌아가더라도 아버지를 신고하겠느냐’는 폭스4 기자 질문에 “네, 그럴 겁니다”라고 말했다. 잭슨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잭슨의 사연이 알려진 후 일부 지인들은 온라인모금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모금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아버지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거나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 학자금과 생활비 등을 마련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는 지난 22일 고펀드미의 자신의 페이지를 개설했고, 지금까지 12만3000달러(약 1억3500만원)가 모였다. .

Hwanghyunsoo
ywlee
2021-01-21
토론토 집값이 미쳤다-쓰레기장 같은 집이 백만불

▲100만불짜리 집: 최근 100만불(정확히는 99만9천불)에 리스팅된 스카보로의 한 주택과 내부 모습      다음은 본인이 6년 전에 쓴 글이다. “최근 노스욕에 있는 어느 지인의 집에 갔다가 속으로 놀랐다. 솔직히 말해 어디 앉을 데가 없었다. 우리 부부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이 함께 식사를 하는데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루에서는 삐걱소리가 났고 화장실도 너무 허름했다. 그런데 옹색하기 짝없는 이런 ‘하꼬방’ 집이 값으로 치면 100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노스욕은 요즘 웬만하면 집값이 백만 달러를 다 넘는다. 예전엔 밀리어네어라면 부자를 상징했지만 이제는 그런 집이 흔한 시대가 됐다…”   그럼 6년이 지난 지금 그 집은 가격이 얼마나 할까. 추정컨데 150만불을 훨씬 넘을 것이다.         0…요즘 토론토의 주택시장이 매우 뜨겁다. 뜨거운 정도를 넘어 가히 미쳤다고 할 정도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집값이 미쳐 날뛰며 정점을 찍었던 2017년 초반 당시로 되돌아가는 모양세다. 토론토 주택시장은 4년 전 당시 온타리오 주정부의 과열 부동산시장 안정화 조치 이후 2, 3년간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으나 그후 다시 서서히 오를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초 난데없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터졌고 주택시장은 바짝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도 잠시, 코로나로 세상이 급격히 변하면서 ‘아늑한 내집’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에 집값이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집은 주거공간인 동시에 업무용 사무실 기능까지 하게 됐다. 출근하지 않고 원거리에 떨어져 있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업무처리는 물론 다자 회의까지 아무 지장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 직장의 개념도 바뀌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먼 거리를 불사하고 집값이 토론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주거환경도 쾌적한 외곽지역으로 이사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이러다 보니 시 외곽지역의 집값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0…나는 부동산중개인으로 일하는 아내가 주말에 외곽지역에 쇼잉을 갈 경우 바람도 쐴 겸해서 운전을 해준다. 새해 초의 일이다. 어느 고객이 해밀턴의 집을 보고 싶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갔다. 고객 가족들과 아내가 해당 집을 보는 동안에 나는 산책 겸 동네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아내가 쇼잉을 하는 동안 다른 차량들이 서서히 몰리는 것이 그 역시 집을 보러 온 것 같았다.  그 집 외에 다른 집을 서너 채 보고 돌아온 후 이틀 정도가 지났다. 퇴근 후 아내가 하는 말, “해밀턴 그 집에 오퍼가 몇개 들어온지 아세요? 자그마치 45개!”. 50만불 정도로 리스팅 된 그 집은 소위 멀티오퍼를 거쳐 최종 낙점된 가격이 70만불이었다. 아내는 그 집을 산 사람이 실제로 생활을 하려면 내부수리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수리비용까지 합하면 75만불 정도는 될 것 같다고 했다. 폭등하는 집값의 실상에 입이 딱 벌어졌다.    지금 토론토는 말할 것도 없고 시 외곽지역까지 이런 사례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 100만 달러에 리스팅 된 스카보로의 어느 단독주택(정확히는 99만9천 달러). 3베드룸에 1 개 화장실이 있는 이 집을 본 사람들에 의하면 이건 집이 아니라 마치 쓰레기통 같았다고 한다. 허름한 외관은 그렇다 치고 집 내부가 전혀 관리가 안됐을 뿐 아니라 팔려고 내놓은 집에 온갖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기겁을 했다고 한다. 이런데도 매물은 순식간에 팔린다.                 0…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지난해 초만 해도 주택시장은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란 게 대다수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예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금 캐나다의 주택시장은 한여름 폭염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마음이 급해져 웃돈을 붙여가며 살 집을 찾고 있다.   집값 급등의 원인은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무엇보다 코로나로 억눌렸던 부동산시장이 코로나 사태가 점차 안정세 내지는 무감각해지면서 잠재됐던 수요가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정부에서 막대한 구호자금을 풀어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고, 이자율은 사상 유례없이 싸기 때문에 자연히 주택과 증권시장으로 발길이 몰리는 것이다. 0…코로나 사태에 따른 실물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주택구매 열망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올해 집을 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택구매 욕구가 비등하는 현 시점에 매물은 갈수록 부족하니 가격은 더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많은 사람이 외곽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길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원거리에서도 얼마든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데 구태여 집값 비싸고 교통도 혼잡한 대도시에서 살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종합해볼 때 주택시장은 전 지역으로 계속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집값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유주택자야 당연히 값이 오르면 좋지만 무주택자들의 내집 마련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특히 평범한 젊은이들이 부모의 도움 없이 첫집을 장만하려면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서 집 없는 서민들에게는 부동산시장이 활황이라는 말을 하기가 미안하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Hwanghyunsoo
2021-01-21
‘싸바, 싸바, 싸바’

  벌써부터 민해경과 양혜규를 두고 누구를 먼저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 민해경을 쓰는 게 맞지 싶다. 민해경은 1980년에 데뷔해서 1990년대 초까지 인기 있는 가수였다.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그대 모습은 장미>, <보고 싶은 얼굴> 등 다수의 히트곡이 있다. 1990년대 말, 목포에 출장 갔을 때다. 공연이 끝나고 주최측인 목포 MBC에서 ‘수고했다’고 뒤풀이나 하자고 데려간 곳이 무슨 호텔 나이트클럽이었다. “이곳 목포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속셈이 표가 날만큼 호화롭고 규모가 컸다. 당시 그런 무대는 대개 전속 보컬 밴드가 있었고, 게스트 가수가 돌아가며 나왔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서울에서 유명 가수가 내려오기 몇 달 전부터 시내 곳곳에 현수막도 붙이고, 지역신문에 홍보도 해서 공연 날에는 저 멀리 광주에서도 공연을 보러 온다”고 한다. 그 날의 게스트는 민해경이었다. 속으로 ‘그래도 왕년에 한가락하던 민해경인데 목포까지 와서…’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관객들은 늦은 시간이고 취기가 올라서인지, 무척 들떠 있었고 민해경은 벌써 앙코르를 두 번이나 했지만, 무대를 떠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제, 진짜 마지막 곡이에요. 제가 1982년도에 부른 노래인데,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서기 2000년이 오면> 불러 드릴게요”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나는 ‘어… 이 노래를 어디서 들었지?’ 했고, 플로어에 있던 관객들은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춰 댔다. 그리고 후렴부의 “싸바, 싸바, 싸바”를 관객들이 주문처럼 따라 불렀다. <서기 2000년이 오면>은 1982년에 외국곡(아마 프랑스)을 박건호가 작사를 하고 민해경이 노래를 한 에어로빅 댄스곡이다. 흥겨운 멜로디와 희망을 예언하는 기이한 가사 때문에 곡이 나오자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우리는 로켓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 /싸바, 싸바, 싸바, 그 날이 오면은/ 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그러나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혼란의 시대여서 20년 뒤에 로켓을 타고 별들 사이를 날아다니던 말던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정작 2000년이 되었는데 어쩌나, 로켓은 날아다니지 않고 끝없이 즐겁지도 않으며, 전쟁은 도처에서 쉬지 않고 벌어지고 모든 꿈도 이뤄지지도 못했다. 민망한 가사만큼 이 노래도 잊히고 민해경도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잊힌 민해경의 노래를 양혜규라는 설치 미술 작가가 다시 끄집어낸다.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독일 베를린과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국보다 세계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 작가다. 1994년에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미술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46살에 그녀가 유학한 독일 대학에서 교수가 된다. 지난 2017년에는 아시아 여성 최초로 독일 현대 미술협회가 주는 <볼프강 한 미술상>도 받는다. 수상과 함께 열린 회고전에는 관객 6만5742명이 다녀갔다. 2018년에 그녀는 매년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을 뽑는 <아트리뷰>에서 73위에 오른다. 말 그대로 전 세계 비엔날레와 미술관을 누비며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다. 2019년 양혜규는 서울에서 전시를 하며 민해경의 <서기 2000년이 오면>을 제목으로 쓴다. 당시 어느 기자는 “그의 전시장에 발을 디디면 멀리서 <서기 2000년이 오면>이 들려온다. 4분 남짓한 곡의 절반 이상이 후렴부인 ‘싸바(싸바), 싸바(싸바), 싸바(싸바)’로 뭉개지는 이상한 노래다.”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1982년 민해경 씨의 노래가 발표된 시점에서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2000년이 황당한 가사로 밖에 불려지지 못할 만큼 먼 미래였을 거예요. 이 노래 안에는 시간도 시제도 있어요. 벽지처럼 말려 들어가고 접혀 들어가는 시간이죠. 평범한 유행가 안에서 불현듯 그런 접힌 시간을 봤고, 당시 제가 보냈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작가는 전시의 제목이 ‘왜, <서기 2000년이 오면> 인가?’를 공들여 설명했지만, 설치 미술을 잘 모르는 나는 그저 목포의 추억이 떠올라 좋았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순간 이동 축지법에 벽지처럼 내가 말려든 것이다. 인터뷰 끝에 그녀는 2020년에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미술관(AGO)에서 <창발(創發•Emergence)>이라는 전시를 한다고 말한다. 그 기사를 보며 2020년의 전시 날짜를 달력에 적었다. 그녀의 행동이 철학적이기도 하고 재치도 있고 멜랑콜리하기도 하고 삐딱하기도 해서다. 10월 1일에 약속대로 양혜규의 <창발(創發)>이 토론토 온타리오 미술관에서 열렸다. 하지만, 코비드 때문에 정부는 일반인의 관람을 자제하라고 했고, 그럼에도 극성스러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관람을 했다는 기사를 봤지만,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기회가 있겠지 하며 기다렸는데, 지난주부터 락다운이 되는 바람에 아예 전시 날짜마저 1월 21일로 축소된다. 인터넷으로 그녀의 작품을 찾아보지만, 그 실물의 느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토론토 전시 제목인 <창발>은 생물학에서 온 용어다. 어떤 특성이 나타나는 순간, 또는 불시에 돌연히 출연하는 현상이다. 전시는 3년 전부터 기획한 것들인데, 최근의 코비드 시대를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양혜규의 노력과 내공,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됐다. 참, ‘싸바’는 프랑스어로 ‘잘 지내?’라는 뜻이다. ‘싸바, 싸바, 싸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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