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배경 영화(V)-'망향(望鄕)'(Pepe le Moko)(상)

 

 알제리 전쟁 배경 영화를 언급하다 보니 전쟁 영화는 아니지만 알제리 카스바를 배경으로 한 '망향'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너무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마지막 장면 때문이지 싶다.

 

 1937년 프랑스 흑백 스탠더드 작품. 주연 장 가뱅, 미레유 발랭. 러닝타임 94분. 감독 및 각색은 "사탄과 같은 여자(La Femme et le Pantin·1959)"의 쥘리앙 뒤비비에(Julien Duvivier, 1896~1967).

 

 원제는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 즉, '모코인 페페'라는 뜻인데 '모코'는 '툴롱(Toulon, 프랑스 남단 지중해 연안 도시) 출신의 사람'을 일컫는 속어다. 주인공 페페가 툴롱에서 은행을 턴 후 알제리로 도망쳐서 카스바에 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원제는 주인공의 별명과 이름뿐이어서 좀 밋밋하다. 그보다는 우리말 제목 '망향(望鄕)'이 훨씬 더 감정적으로 와 닿는다. 물론 여기서 페페가 그리워하는 고향은 시골이 아니라 파리이다. 고향이 시골이 아닌 도시이어도 거기엔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자신을 쫓는 경찰들 때문에 카스바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파리에서 살던 시절의 그리움만을 간직한 남자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아무튼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프랑스 식민 시절의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도 알제. "담배연기 희미하게 자욱한 카스바에서, 이름마저 잊은 채 나이마저 잊은 채, 춤추는 슬픈 여인아…" 라는 유행가 '카스바의 여인'과는 전혀 무관한 현실 속의 카스바가 펼쳐진다.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0년대. 따라서 당시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이 팽배하던 시기이며 세계 경제대공황이 있던 시기다.

 

 알제리 주둔 경찰들이 거물급 범죄자 페페(장 가뱅)를 잡지 못하자 파리에서 경찰들이 급파된다. 알제리 경찰 슬리만 형사(루카스 그리두스)는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프랑스 경찰들에게 페페에 대해 말한다. "그는 친구에겐 미소 짓고, 적에겐 칼을 꽂죠."

 

 그러나 카스바 안에 숨어있는 페페를 잡는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카스바는 미궁이나 다름없고, 페페는 그런 미궁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註: 요새(citadel)라는 뜻의 카스바(Qasba, Casbah, Kasbah)는 16~17세기 오스만 양식의 왕궁들과 '케차와 모스크(Ketchaoua Mosque)', 알모라비데 왕조의 유수프 벤 타슈핀 왕이 집권하던 11세기에 건립한 '대 모스크(Djama’a al-Kebir, Great Mosque)' 등의 문화유산이 존속하는 한편, 희고 네모난 집들이 미로를 사이에 두고 게딱지처럼 붙어있는 전통적인 독특한 도시구조를 이루고 있어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다. 이같은 도시구조 때문에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 중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주요활동거점으로 이용되었다. 1만 명 정도의 수용능력의 도시에 약 7만 명의 인종들이 얽혀 살고 있기 때문에 현재 알제리 정부는 도시재개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대체 수용시설 등 난제 때문에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카메라는 아름다운 알제리의 밤하늘과 미로 같이 얽혀있는 비좁고 가파른 골목들과 그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찬 집들과 온갖 인종들로 구성된 잡박한 도시 카스바를 훑는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고향을 떠나 오랜 시간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자유와 고향을 향해 달려온 페페의 밀폐되고 억압된 심리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프랑스 경찰들의 동향을 지켜보던 슬리만 형사는 페페가 범죄자란 사실을 알고 체포할 기회를 엿보기도 하면서 페페를 쉽게 만나기도 하는데 페페는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카스바는 은신처로서 완벽하게 안전할 뿐만 아니라, 카스바 주민들은 프랑스 경찰을 싫어하고, 그들과 적대하는 암흑가의 보스인 페페를 영웅시 하여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이다. 또 슬리만 형사가 두목을 섣불리 체포했다간 자기도 피살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날 파리에서 파견된 경찰들이 대규모의 대원들을 이끌고 카스바를 급습한다. 카스바 사람들은 지팡이나 막대기를 두드리면서 자신들만 아는 암호 같은 신호를 보내면서 경찰들이 쳐들어온 소식을 알린다.

 

 페페의 부하 레지스(페르낭 샤르팽)가 경찰들이 잡으러 온다는 사실을 알리러 페페의 숙소로 간다. 마침 페페는 그랑페르(샤튀르냉 파브레)에게 장물인 보석을 팔러 갔기에 페페의 동거녀인 이녜스(리네 노로)에게 습격 사실을 알려준다. 이녜스는 금남(禁男) 구역인 테라스를 통해 페페에게 알리러 간다.

 

 이윽고 경찰과 살벌한 총격전이 벌어지지만 유유히 테라스를 통해 도망치는 페페 일당. 이처럼 카스바 안에서 페페를 붙잡는 것은 허황된 꿈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카스바는 그의 존재를 외부와 단절시켜놓는 감옥과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가 죽으면 3천 명의 과부가 생길 정도로 많은 여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페페는 카스바에서 절대적인 존재이지만 거의 2년을 숨어 지내는 생활이 갑갑하기만 하다. 이녜스와의 동거 생활도 지겹다.

 

 그런 중에 어느 날 밤, 페페는 경찰의 기습을 피해 달아나다가 레스토랑에 들러 마침 그곳을 여행 중이던 미모의 여인과 마주치게 되는데…. 나이 많고 뚱뚱한 부자 맥심(샤를 그랑발)의 정부(情婦)인 가비 굴드(미레유 발랭)는 젊고 패기있는 페페와 금세 이끌린다. 둘다 파리의 동향이어서 몽마르트르, 샹젤리제 등 서로 같은 기억과 향수(鄕愁)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중 첩자인 레지스가 경찰에게 페페가 아끼는 똘마니 피에로(질베르 질)를 미끼로 하면 페페를 잡을 수 있다는 묘안을 내고 실행에 옮긴다. 피에로의 연로한 어머니가 느닷없이 알제에 와서 어느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거짓 편지를 써서 그를 유인하는 레지스. (다음 호에 계속)

 


▲ '망향(Pepe le Moko·1937)' 영화포스터

 

▲ 카메라는 아름다운 알제리의 밤하늘과 희고 네모난 집들이 미로를 사이에 두고 게딱지처럼 붙어있는 도시 카스바를 훑는다.

 


▲ 카스바 사람들은 지팡이나 막대기를 두드리면서 페페에게 경찰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알린다.

 


▲ 살벌한 총격전이 벌어지지만 유유히 테라스를 통해 도망치는 페페. 이처럼 카스바 안에서 페페를 붙잡는 것은 요원하다.

 

▲ 슬리만 형사(루카스 그리두스)는 페페(장 가뱅·왼쪽)가 범죄자란 사실을 알고 체포할 기회를 엿보기도 하면서 그를 쉽게 만나기도 하는데 페페는 개의치 않는다.

 

▲ 나이 많고 뚱뚱한 부자 맥심(샤를 그랑발)의 정부(情婦)인 가비 굴드(미레유 발랭)와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페페는 첫눈에 반한다.

 


▲ 파리의 동향인 가비 굴드(미레유 발랭)와 페페(장 가뱅)는 금세 서로에게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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