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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배경영화(III)-'모정(慕情)' (2)

 

 첫 데이트 장소가 바로 현재 애버딘(Aberdeen) 지역구에 위치한 점보식당 옆에 있는 작은 '타이팍(太白) 선상레스토랑'이다. 식당으로 가는 보트의 노를 젓는 두 여자 중 한 명은 아기를 등에 업고 노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註: 원래 점보 레스토랑(珍寶海鮮舫, Jumbo Floating Restaurant)과 태백 선상 식당(太白海鮮舫, Tai Pak Floating Restaurant) 등 둘로 구성된 점보왕국(珍寶王國, Jumbo Kingdom)으로 1952년에 오픈하였다. 따라서 영화 속 시대적 배경과 맞지 않는다. 그런데 점보레스토랑은 1971년 10월30일에 34명이 죽고 42명이 다치는 대화재가 났다. 1976년 10월에 홍콩·마카오 재벌인 스탠리 호의 투자로 재건되어 점보 레스토랑 1호, 2호가 오픈하였으나 현재는 2호와 태백 식당만 남아있다.]

 

식당 바깥은 '달맞이 축제'를 맞아 폭죽 소리가 요란하다. 수인이 "구름이 달을 가릴까 봐 겁을 줘서 멀리 쫓는 것"이라며 "그래야 한 해의 불운이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마크가 갸우뚱 하자 "믿기지 않는 것을 믿을 때 신앙이 생기는 게 아니겠느냐?"고 되묻는 수인. 이 말에 두 사람은 젓가락으로 접시를 열심히 두드리는데, 구름이 밀려가며 달이 보이기 시작하자 '좋은 징조'라고 말하며 행복해 하는 수인.

 

 평생 남자라면 국민당 장군으로 공산당에게 총살 당한 남편 하나밖에 모른다는 수인은 자기는 이제 여자가 아니라 의사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크는 우리 사이에 운명이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마크는 첫눈에 수인에게 반하지만 남편 사후 조용히 살아온 수인은 그런 마크의 접근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마크의 구애에 결국 수인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데….

 

 수인을 병원 숙소로 데려다 주고 무조건 다음 수요일에 연락하겠다며 헤어지는 마크. [註: 영화 속 병원 건물은 홍콩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만든 궁전 같은 곳이다. 1911년 부호인 목(莫) 가문(Mok family)이 세운 건물로 1951년에 외국기자클럽으로도 사용된 명물이나 그 후 헐리고 1970년에 리얼티 가든스 아파트 단지로 조성되었다.]

 

 다음 날 병원. 닥터 센(캄 통)이 수인에게 "닥터 한의 진료는 예술같다"며 "같이 일하는 게 자랑스럽다"고 치켜올리자 "사랑으로 대하는 것뿐"이라고 대꾸하는 수인. 그리고 광동어로 대화하며 여자아이 '오노'를 진찰하는 수인. 열흘 전에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고아다. [註: 오노(Oh-No) 역의 캔더스 리(Candace Lee)는 1958년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추격기(The Hunters)'에서 한국어린이로 나왔고, 같은 해 '남태평양(South Pacific)'에도 아역으로 출연한 배우이다.]

 

 약속대로 마크로부터 전화가 오는데 싱가포르 출장이 있어서 다음 주에 만나자고 한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 동료 닥터 존 키스가 부탁한 달팽이 두 마리를 사기 위해 시내 찻집에 들른 수인은 우연히 수녀원학교 동창생 수전(조르자 커트라이트)을 만난다. 그녀도 역시 혼혈인데 유부남 영국인을 만나 교제 중이라며 영국인 행세를 하는 게 여러가지로 유리하다고 말하는데, 혼혈이지만 중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라고 충고하는 수인.

 

 병원으로 돌아온 수인이 수족관 물고기 먹이인 달팽이를 사다주자 "물고기도 사람과 같아. 끼리끼리 모여서 자기들 세상을 만들지. 수인은 '평화로운 물고기' 족속에 속하지만 심해(深海) 물고기 족속처럼 눈이 멀까봐 걱정"이라고 말하는 닥터 키이스. 수인과 마크와의 데이트를 비꼬는 은유이다. 그 당시 혼혈아의 사회생활은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영국 사회에서도 차별화 되고 더욱이 유부남과의 불륜은 금기시 되는 부분이었다. 혼혈은 생활이 문란하다는 등 여러 선입견 때문이었다.

 

 싱가포르에서 도착하자마자 수인의 병원을 찾아온 마크 엘리어트.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아들린 파머 존스 부인과 맞닥뜨리는 두 사람. 어떤 험담과 수다가 이어질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안 그래도 닥터 한을 자기 전속 하인인 양 걸핏하면 오라가라 호령하는 이사장 부인이 아닌가.

 

 둘은 수영을 하면서 데이트를 한다. 마크는 이혼을 하려고 하는데 부인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고백을 한다. 반면 수인은 혼혈이기 때문에 자기는 당신 상대가 아니며 인종차별의 대안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자기는 일과 삶이 있으므로 그 외의 감정은 필요치 않으며 고독을 느끼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수인. [註: 이 해변이 바로 '리펄스베이(Repulse Bay, 淺水灣)'로 홍콩섬 남부에 있는 인공 해수욕장이다. 여기에서의 키스 신은 뭇 여성들의 로망이 되었다. 한국에는 영화배우 최은희(1926~2018) 씨가 1978년 1월14일 이곳에서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북한공작원에게 납치되어 푸라마 호텔(지금은 없어짐)에 감금되었다가 마카오를 경유하여 월북 되는 큰 사건 때문에 알려지게 되었다. 남편 신상옥(1926~2006) 씨도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가 같은 해 7월19일에 역시 납북되었다. 납북된 이후 약 8년 동안 이 부부는 북한에서 영화 활동을 하면서 영화 17편을 제작했다. 1986년 3월13일 오스트리아 빈에 있던 중에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탈북에 성공했다.]

 

 수인의 친구집이 해변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둘은 헤엄을 쳐서 건너간다. 수영 중간에 수인이 지난 몇 주는 (마크) 덕분에 세상이 밝아졌다고 고백한다.

 

 로버트 헝(리처드 루)과 부인 노라(수 영) 그리고 앤 리처즈(버지니아 그레그)가 "바다에서 솟아난 비너스 여신이 나타났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앤이 수인에게 '넌 완전히 빠져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며 '응큼하다'고 호들갑을 떨자 "지성인들의 인간적인 교제를 그런 식으로 봐야겠냐"며 "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과 친구로 사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수인. "너와 엘리어트씨니까 문제지!"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앤. 여기서도 친구이긴 하지만 혼혈녀에 대한 편견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로버트 헝이 마크에게 홍콩의 안전에 대해 물어보자 "어딘들 안전하겠소?… 동서양은 좀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대답하는 마크.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라디오를 틀자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마크와 수인은 주위에 아랑곳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데…. (다음 호에 계속)

▲ '태백 선상식당'으로 가는 보트를 호객하는 여자 뱃사공들이 서로 선점하기 위해 마크와 수인을 에워싸고 있다.

 

▲ 첫 데이트 장소인 '태백 선상식당'으로 가는 보트에서 담소하고 있는 마크(윌리엄 홀든)와 수인(제니퍼 존스).

 

▲ 두 사람은 젓가락으로 접시를 열심히 두드리는데 구름이 밀려가며 달이 보이기 시작하자 수인은 '좋은 징조'라고 말한다.

 

▲ 싱가포르에서 도착하자마자 수인의 병원을 찾아온 마크 엘리어트.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아들린 파머 존스 부인(이소벨 엘섬)과 맞닥뜨린다.

 

▲ 둘은 해변 건너편에 있는 수인의 친구집으로 헤엄쳐 건너간다. 중간에 수인이 지난 몇 주는 덕분에 세상이 밝아졌다고 말한다.

 

▲ 헤엄을 쳐 해변 건너편 친구 노라 헝의 집에 도착하는 수인과 마크.

 

▲ 마크와 수인은 라디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주위에 아랑곳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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