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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예지(叡智)

 

 인류 역사에서 3번째 대규모 감염병으로 밝혀진 COVID-19은 우리들의 사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와중에 변이(變異)바이러스가 지구촌 곳곳에서 발견되고 확산속도가 빠른 것으로 알려지고, 기존의 치료제와 백신의 효과도 확인되지 않아 장밋빛 예상과는 달리 우려 섞인 전망에 불안감이 커진다. “치료제보다 백신 개발에 최선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앞장이건 뒷장이건 ‘꿩 잡는 게 매’ 아닐까요?

 

 음식은 정성이고 마음이다. 식사를 함께 나누고 차(茶) 한 잔 마시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남보다 한 발짝 앞장을 서야 성공이고, 질주해야 행복할 것으로 여겼던 우리들이지만, 이웃이 건강해야 나도 덩달아 건강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국정운영의 고위 책임자는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는 법’을 익혀야 하고, 학령아동(學齡兒童)의 감소는 국가의 존망(存亡)이 벼랑 끝에 걸린 문제라는 염려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미심쩍었던 “흙의 불편한 진실”을 ‘모야모’에서 읽고 얻은 작은 기쁨을 공유하고프다. “화분으로 키우는 식물에게는 분갈이만한 보약은 없습니다. 특히 화원에서 구매한 화분은 반드시 분갈이를 해주어야 한다. 큰 화분으로 옮길 경우 분을 빼어낸 채로 이식해도 되지만, 같은 화분을 사용할 경우 뿌리의 일부를 잘라주고 뿌리에 원래의 흙은 털어 새 흙에다 심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과정만 실행해도 식물을 죽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식물 기르기에 ‘마이더스(Midas)의 손’은 없답니다, 다만 몇 가지의 실상을 몰라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랍니다.”

 

 세월은 겨울이 가면 봄이 다시 찾아드는 것을 수없이 거듭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꼼짝 못하게 제패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피조물의 한계점을 깨달아가는 시간이다. 천지의 창조주 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가 이겨내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로다. 무릇 섭리(攝理)하심을 찾는 믿음이 풀꽃 하나가 입은 영광만도 못하다는 것을 깊이 성찰(省察)하는 데에 그 힘이 있을 줄로 안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이문회우,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가 있다. ‘공부하는 사람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그 친구들로 인해 인격적인 감화와 지적(知的) 자극을 받는다. 친구의 장점을 본받고 자기의 단점을 보완하라는 증자(曾子)의 말씀은 벗을 사귀고 서로 도우면서 스스로 세운 뜻으로 자신을 가두려들지 말고, 내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 않고 성장해감을 일러준다.

 

 ‘갯버들의 자질(資質)은 가을이 오기도 전에 잎이 지는데, 소나무와 잣나무의 바탕은 서리(霜)를 겪어도 오히려 무성하다’(蒲柳之姿 望秋而落 松柏之質 經霜?茂)는 말이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전한다. 아무렴 사람들의 성급해진 마음이 굴뚝같을지나 숟가락 얹기에 너무 바빠 자기만 모르고 있으니 어쭙잖기도 한다. 문제는 겸손해지는 것이지 겸손해 보이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무렴 주위의 빈축(嚬蹙)을 사는 줄 모르는 오지랖은 안타까운 일이다.

 

 통합과 협력의 가치보다 얄팍한 이기심을 애써 감추며 눈감고 ‘야옹’하는 세상사(世上事)는 그렇다손… 실천보다 말하기가 훨씬 용이(容易)한 줄 그 누가 모를까마는, 나잇살을 거꾸로 더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나저나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면 결과는 대동소이(大同小異)했을 것이라며 멋쩍게 동정을 구하는 눈짓을 보일 일은 아니다.

 

‘목동이 나그네를 보고 인사하는데/ 산과일이 품안에서 떨어지네./ 한낮에 소 몰고 돌아오느냐 물으니/ 앞 계곡에 비바람이 사납다하네.’ “牧童見客拜 山果懷中落 晝日驅牛歸 前溪風雨惡” [ 유가(劉駕)/唐, 《목동(牧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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