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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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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33)-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8)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베르밀리온탑 앞 산책로

 

베르밀리온 탑에 갇힌 기독교인 포로들은 훗세인 바바라고 하는 구레나룻 수염에 어깨가 딱 벌어진, 이슬람으로 개종한 기독교인의 감시하에 있는데, 이자는 뇌물을 받아내는 걸 좋아한다는 군요. 카디가는 그를 찾아가 몰래 큰 금화 한 닢을 손에 쥐어주며 말했어요.

“후세인 바바, 내가 모시고 있는 세 공주님이 탑에 갇혀 오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서글픈 지경에 계시다오. 히스파냐 기사들이 음악에 뛰어나단 말을 들으시고 그들의 재주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하시는군요. 당신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니 이 순진한 소원을 거절하진 않으리라 생각해요.”

“뭐, 뭐라구요? 탑문 꼭대기에 내 목이 달리는 걸 보고 싶소? 폐하가 이걸 아신다면 벌을 내릴 게 분명한데.”

“그럴 위험은 없다오. 공주님들의 소원을 들어주되, 폐하가 모르시게 할 수 있다오. 성 밖에 탑 밑으로 지나는 깊은 계곡을 아시죠? 세 젊은 기독교인들을 거기서 일하게 하고, 쉬엄 쉬엄 연주하고 노래도하게 하세요. 그러면 공주님들이 탑에서 창밖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테고, 당신의 협조엔 후한 보상이 따르게 해주실 겁니다.”

착하고 나이 많은 카디가는 열변을 마친 다음, 이슬람 교도로 전향한 바바의 우람한 손 바닥에 금화 한 잎을 더 밀어 넣었어요.

카디가의 유창한 언변엔 이겨낼 사람이 없네요. 바로 다음날로 세 기사는 그 계곡에 배치 되었어요. 뜨거운 대낮, 동료 노역자들이 그늘에서 쉬고 경비병은 제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동안, 그들은 탑 아래 잔디에 둘러앉아 기타 소리에 맞추어 히스파냐 민요를 불렀어요.

골짜기는 깊고 탑은 높았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여름 대낮의 고요를 깨고 탑 위로 울려 퍼졌어요. 공주님들은 발코니에 앉아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었고요. 카디가에게서 히스파냐어를 배워 온 공주들은 그 정다운 노래에 감동할 수 밖에요. 그런가 하면 똑 소리나는 카디가는 엄청나게 충격을 받고, “알라시여, 우리를 보호하소서!”하고 울부짖었어요. 

“저 기사님들은 아가씨를 향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군요. 어찌 저리 뻔뻔할 수가! 제가 노예감독에게 달려가 그들을 소리 나게 두들겨 주라고 하겠어요.”

“뭐라고, 곤장으로 치라고? 저렇게 당당한 기사님들이 저렇게 매력있게 노래 했다구 태형을?” 아름다운 공주님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어요. 카디가가 화를 낸 것은 당연하지만, 착하고 온화한 그녀는 쉽게 마음을 가라앉혔어요. 그 음악이 공주들을 기쁘게 해주는 듯 했으니까요.

공주들의 뺨은 이제 장미 빛으로 붉게 물들고 눈동자는 반짝이기 시작하네요. 카디가도 젊은 기사들의 연정이 담긴 사랑의 노래를 더 이상 반대할 재간이 없었고요.

노래가 끝나자 공주들은 한동안 침묵에 잠겼어요. 그러다가 조라이다는 마침내 만돌린같이 생긴 류트를 집어들어 달콤하고 애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류트 가락에 노래를 실어 보냈어요.

“장미는 꽃잎 사이에 숨어 있어도, 나이팅게일의 노래 소리 기쁘게 귀 기울여 듣고 있다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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