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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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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지 배론과 황사영의 백서(帛書)

 

비록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펴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간다.” (시편 19:3,4)

 

 한국교회사연구소의 동인회 회원들은 1년에 5, 6차례 국내 성지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런데 주말에만 떠나는 일정 때문에 회원이면서도 참가할 엄두를 못 내다가, 평소에 관심 있던 ‘황사영의 백서’가 있는 제천의 배론에 간다기에, 주일아침 예배도 빠지면서 기어이 따라 나섰다. (성지에서 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배 밑바닥 같이 생긴 배론이라는 작은 마을의 한 토굴 속엔 ‘한국 근대사에 남긴 순교자의 마지막 유서’라고 할만한 황사영의 백서가 피맺힌 사연을 안고 의연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사영은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사위이다. 일찍 진사가 되어 서울에 올라왔고, 처당숙 정약전의 인도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한국 최초의 청국인 신부 주문모에게 사사했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이리저리 피신하다가,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 배론 산중에 토굴을 파고 숨어 지냈다. 그는 천주교회의 한국정착과 신앙의 자유를 실천시키려는 일념으로,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흰 명주 천에 1만자가 넘는 긴 백서를 깨알같이 써서 북경교구의 주교에게 보내기 직전에, 백서를 함께 썼던 황심이 밖에서 체포되는 바람에 토굴생활도 발각되고 말았다.

 

 백서의 내용은 1791년의 신해박해로부터 신유박해까지의 고난과 순교내용이며, 특히 이때 참수당한 주문모 신부의 행적과 이에 대한 방안이 적혀 있었다.

 

 그 방안은 서양 각국에서 자금을 각출해줄 것과, 교황이 청국황제에게 글을 보내 선교사를 받아드리게 해줄 것과,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조선을 감독하게 해줄 것과, 외국 배와 무기와 군사 5만-6만 명을 보내서 위협하여 선교사를 받아드리게 할 것을 청원한 내용이다.

 

 이것은 그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 사상, 종교, 사회에 걸쳐 세밀한 비밀자료를 보여주긴 했지만, 청국예속 청원부분은 사대주의 사상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백서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조선이라는 나라의 백성으로서 보다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행위로 이해하게 된다. 가로 62센티, 세로 38센티의 얇고 흰 명주천에 1만자의 글씨를 깨알같이 박아 쓴 그 백서가 세기를 거치면서도 연구과제로 남아있음도 하느님의 어떤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순교하고 약 50년 후 1815년에 바로 이 터에 한국 최초의 가톨릭신학교가 생겼다는 것도 물론 하느님의 역사임에 틀림 없으리라.

 

 황사영의 백서는 황사영, 황심 등이 참수를 당한 후 거의 1세기가 지난 1894년경에 포도청 의금부에서 고문서들을 태우다가 발견되었고, 그 당시 한국교구 책임자 뮈텔 대주교의 손에 들어갔다. 뮈텔은 그것을 로마교황 비오 XI세에게 한국 천주교 순교복자 시복기념으로 헌납했다. 지금 바티칸 교황청 고문서관엔 황사영의 피맺힌 명주편지가 보관되어 있고, 배론에 있는 것은 그 복사판이다.

 

 그토록 심한 정부의 탄압과 외세의 어두운 그늘에서도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알리고자 목숨을 내놓고 선교했던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할 때, 편안한 여건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행운이란 생각이 들기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앞설 뿐이다.

 

 황사영과 황심, 옥천희 등이 숨어있던 토굴로 올라가는 언덕길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걸어 올라가신 ‘슬픔의 길’ Via Dolorosa 처럼 14처에 세워놓은 예수님의 조각상 위에, 그들의 고난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번 여름엔,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지도자교육 과정의 마지막 날, 성지 배론에 또 한번 들리게 된다. 성스러운 고장, 제천에서 사회선교에 앞장선 명락교회의 이명선 목사님께서 노인학교지도자들을 초청해 주신 것이다. 배론 뿐만 아니라, 이 슬픈 역사를 달래주는 듯한 절경의 단양 8경과 옥순봉으로 페리호를 타고 구경할 일이 지금부터 마음 설레이며 기다려진다.

 

서울 <안동장로교회보> 47호 1994.7.24

 

(참고자료)

  • “신미년에 조선천주교 신자들이 북경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연구” -1811년 신미년의 서한- 주문모 신부의 죽음직후 현상에 대해 p. 53 (윤민구 신부)

 

  • “한국역사 사료가 전하는 강완숙 콜롬바” (조광 교수 강의; 2005년 7월 명동성당 코스트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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