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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20)-토마스 제퍼슨(1)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토마스 제퍼슨)

토마스 제퍼슨

 

 

토마스 제퍼슨은 정치인, 정치철학자, 변호사, 농장주인 등으로 알려졌고 버지니아대학을 설립했다. 또한 미 독립선언서 본문을 작성했고, 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미국의 영토를 두 배로 늘린 미 3대 대통령이었다.

 

성장교육

제퍼슨은 1743년 4월13일 버지니아주 쉐드웰 농장에서 피터 제퍼슨과 제인 랜덜프 부모의 10자녀 중 3번째인 첫아들로 태어났다. 14세에 5000 에이커와 175명의 흑인노예 농장주였던 부친을 잃고 1759년 16세에 버지니아주 윌리엄스에 소재한 윌리엄 앤드 메어리대학에서 수학 및 철학을 전공하며 잔 로크, 프란시스 베이컨, 아이삭 뉴톤의 이론을 공부했다.

틈틈이 가보로 내려온 200여권의 책을 탐독하여 문장력을 키웠다. 졸업 후 조오지 위드 변호사사무실에서 연수를 받고, 1767년 변호사 자격증을 받았다. 1769년부터 1774년까지 버지니아주 농장대의원직을 맡았고, 1774년엔 “영국의회는 미 식민지에 통치권한이 없다”는 팜플렛을 발간했다. 1775년 미 독립전쟁이 시작되면서 제퍼슨은 미 연합상원의 버지니아 대표가 되었다.

 

독립선언문

제퍼슨은 미 연합상원 초년생이었지만 그의 특출한 문장력으로 잔 애덤스, 라저 셔만, 라버트 리빙스턴과 함께 5인의 독립선언문 편찬위원이 되었다. 그들이 경험이 풍부한 애덤스를 초안작성자로 선출했을 때 애덤스는 독립선언서 머리말을 쓰고 본문은 제퍼슨에게 부탁을 하였다.

제퍼슨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는 잔 로크와 잔 밀튼 사상에 기초를 두어 “인간은 자유롭게 살 권리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신에 의해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이 권리와 자유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내용을 독립선언서에 강조하여 미 독립전쟁을 이끌어가는 조오지 워싱턴 미 연합총사령관을 비롯하여 수하의 장성들과 민병대의 열광적인 애국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제퍼슨은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다(All Men are created equal)”라는 유명한 문구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이 독립선언서는 1776년 7월 4일 미 연합상원에서 목숨을 건 56명의 13주 대표들이 서명하고 공포되었다,

참고로 그 당시 흑인은 물론 백인이라도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남자들은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여자들은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없었다. 따라서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이 소유권을 갖고 아들이 없으면 재산 관리만 할 수 있고 소유주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소송을 받거나 걸 권리도 없었다.

따라서 미 독립선언서는 미 식민지 개척자들 중 대표적인 부유층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미 독립선언서를 받은 조오지 3세 영국왕은 온통 자기를 비방하는 치욕적인 선언문을 읽고 분개하여 영국군에게 총공격을 명령하고 영국은 미 연합의 흑인노예 정책으로 신음하는 흑인들을 징집하여 미 독립군에게 총부리를 가하게 했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수의 흑인노예들이 캐나다로 도주하여 영국군에 가담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이 캐나다 시민이 되었다.

 

미 초대 국무장관(1789 – 1793)

미 독립선언 후 제퍼슨은 버지니아 주의원직을 맞고 1779년부터 2년간 버지니아 주지사가 되어 종교의 자유를 버지니아주 법안으로 만들었다. 이 법안은 후에 미 헌법수정안1조의 근간이 되었다. 제퍼슨은1784년 프랑스 파리에서 애담스와 함께 프랭클린을 보좌하여 파리조약을 맺고 유럽각국을 다니며 외교활동을 하고 1789년 미국으로 돌아와 워싱턴 초대대통령 내각의 초대 국무장관직을 맡았다.

제퍼슨은 해밀턴의 경제정책을 극구 반대하여 분쟁이 끝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1791년 해밀턴과 애덤스는 잔제이와 함께 연방당을 만들었고 다음해 제퍼슨은 제임스 메디슨과 제임스 먼로와 함께 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중앙 연방체제를 강화하여 13개 주의 재정과 방위를 통제하고 이를 위해 세금과 통화팽창으로 공업생산경제개발을 일으켜 국력을 키우는 해밀턴의 연방당정책에 반해 중앙연방체제를 축소시켜 국가경비와 세금을 줄이고 농업으로 주정부의 성장에 초점을 두자는 제퍼슨의 민주공화당은 결국 무소속인 워싱턴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해밀턴의 손을 들어주는 정책으로 이어갔다.

1812년 연방당은 당내파벌로 해산되었고, 민주공화당은 1825년 위그당으로 변천했다가 1850년경 해밀턴의 정책을 따르는 민주당과 제퍼슨의 정책을 추종하는 공화당으로 나누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170여 년이 지난 2021년 2월 11일 로이터 통신은 미 역사상 최악의 전직대통령 트럼프를 따라가야 하는 공화당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정통파 공화당 주요 인물 12명 정도가 제3 창당을 위해120여명의 공화당원들과 줌 미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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