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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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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생애(3)-온유와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하는 이삭

 

“이삭이 땅에서 농사하여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네가 우리를 떠나라.’. 아비멜렉이 친구 아훗삭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우리와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내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26:12-29)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지 않고, 가나안에서 비옥하다고 알려진 그랄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거기서 이삭은 사람들에게 리브가가 그의 동생이라 말한다. 아브라함이 두 차례나 그의 아내 사라를 동생이라 속인 것과 똑같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창 12:10-20; 20:1-7).

하지만 이삭의 경우에는 그랄로 갈 때부터 그럴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리브가를 탐내서 그에게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리브가를 그의 동생으로 행세하게 한 것은 행여라도 그녀로 인해 그의 신변이 위험해질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이 아내를 동생이라 속이는 잘못을 범했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삭이 이 같은 거짓말을 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후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그의 역사운영을 위한 도구로 택하셨고, 부족한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며, 사용하셔서 그의 인류구원 사업을 이루신 것이다.

감춘 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이삭의 거짓말은 곧 드러난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왕실 창문을 통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째서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였느냐고 이삭을 질책한다.

이삭이 그녀로 인해 그가 죽게 될지도 몰라 그랬다고 하자 아비멜렉은 “잘못했으면 백성들 중 누군가가 그녀와 동침하여 큰 죄를 지을 수도 있었다.”며 모든 백성들에게 이삭과 리브가 부부인 사실을 공포하고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선언한다.

아비멜렉의 이 같은 처사로부터 우리는 그 당시 블레셋 사람들의 도덕관념이 이삭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남의 아내에게 욕을 보이거나, 함부로 빼앗는 것을 큰 죄로 여겼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삭이 리브가로 인해 자신이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큰 착각이었다. 그리고 이삭이 리브가를 동생으로 위장시킨 것은 이방인들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비열하고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오늘 날로 치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믿는 자들이 세인의 비난이나 조롱을 받을 일을 자행한 것이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심하게 책망하기는 했지만 그가 자기 땅에 머무는 것을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처까지 취해주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시며 그를 지켜주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가 한 약속이 믿기지 않아서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한 이삭을 벌하지 않으시고 보호해 주셨으며, 그가 뿌린 씨의 백배를 수확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다.

그 당시 그곳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삼십 내지 오십 퍼센트의 수확을 더 거두우면 풍작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삭은 주업이 목축업이기에 농사에는 익숙하지도 못했는데 그들이 풍작이라 생각하는 두 배 이상을 거둬드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만 함께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뜻을 받드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의 힘과 능력이 되어주셨다는 사실이다.

외지에서 들어온 이삭이 자기들보다 두 배 이상의 농작물을 거두어 드리며, 소와 양 등의 가축 떼가 늘어나서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심한 질투를 느끼게 되었다. 거기다 이삭은 그의 아내를 동생이라 속인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선입감까지 작용하여 그들은 이삭을 증오하게까지 되었다.

이삭이 뿌린 거짓의 씨가 질투와 증오라는 열매가 되어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심는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풍성한 곡식을 거두고, 그의 가축 떼가 늘어나는 것은 그가 좋은 우물을 가진 때문이라 믿었다. 가나안은 건조할 뿐만 아니라 비가 적게 내렸기 때문에 그곳에서 우물이 갖는 의미는 크기만 했다. 우물은 사람들은 물론 가축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 당시 남의 우물을 막는다든가 메우는 것은 선전포고와도 같은 행동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하는 일마다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가 넓고 비옥한 땅과 좋은 우물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믿고 아브라함이 판 모든 우물을 메워버렸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이삭을 향한 엄청난 횡포와 핍박이었으며, 그곳을 떠나라는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의 압력이나 협박에 반항하거나 대항하지 않았다.

그들과 맞서 싸우면 더 큰 분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던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실 것을 믿고 인내로 그들의 횡포를 감수했던 것이다. 그러자 아비멜렉 왕이 이삭을 찾아와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하니 우리를 떠나라.”고 요구한다.

이삭에게 이같이 말하는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평화협정을 맺은 아비멜렉(창 21:22-34)과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그때의 아비멜렉의 아들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어쨌든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한 것은 왕으로서의 명령이었다. 그가 “당신이 우리보다 강한 때문이다.”라 한 사실은 후일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이 크게 번성하며 강해지자 모세에게 “너는 나를 떠나가라.”(출 10:28)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삭은 아비멜렉의 명령에 항변하지 않고 즉시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옮겨간다. 거기서 천막을 세운 후 이삭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을 다시 판 것이다. 그 우물은 그때 왕이었던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것이라 인정한 것이었는데, 아브라함이 죽은 후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렸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서 그 우물의 물줄기를 찾아내자 그랄 목자들이 그것이 자기네 것이라 우긴다. 이삭은 그 우물을 “에섹”(다툼의 우물)리라 이름 짖고, 새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새 우물에서 물이 나오자 그들은 그것도 자기네 것이라 억지를 부렸고, 이삭은 그것을 “싯나(대적의 우물)이라 한 후 또 다른 우물을 판다.

이 우물에 대하여는 그랄 목자들이 잠잠 하자 이삭은 그 우물을 ”르호붓“(넓은 우물)이라 부르며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번창할 것”이라며 기뻐한다.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의 억지와 횡포에 맞서 대항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인내심의 발휘였다. 애초에 그들이 우물 문제를 가지고 이삭에게 시비를 걸어온 것 자체가 적반하장 격이었으며, 아비멜렉이 이삭이 그들보다 강성하다는 이유로 그곳을 떠나라고 한 것도 부당한 명령이었다. 오늘 날로 치면 미국이나 캐나다 정부가 범법행위가 없는 이민자들을 그들이 성공했다는 이유 때문에 떠나라고 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삭이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인내심을 발휘하자 하나님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며 축복해 주셨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여지를 없애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이삭처럼 불평하며 반항하는 대신 하나님께 의지하면 공의의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로하심에 맡기라.”(롬 12:19)라 말해주고 있다. 이삭이 아비멜렉의 불법적인 명령에 따라 브엘세바로 올라간 날 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창 26:24)고 축복해 주셨다.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었을 때 그를 억압하던 아비멜렉이 그의 친구 이훗삿과 군대 장관 비록을 대동하고 찾아왔다. 이때 함께 온 비골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을 때 동행한 비골과는 다른 인물이다.

이삭이, 싫어서 떠나 보낸 그를 어째서 찾아 왔느냐고 묻자 아비멜렉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보았으니 피차 침략하지 말고 화평하게 지내기로 합의하기 위해 왔다.”(창 26:26-29)고 답변한다. 이삭은 그의 제안을 흔쾌하게 받아드려 아비멜렉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이삭의 믿음과 인내가 가져온 빛나는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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