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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29)

 

(지난 호에 이어)

다음의 퀘벡 역사의 전환점은 1763-1791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퀘벡은 영국의 무자비한 통치하에 산다. 공공기관에서는 불어사용이 금지 되었다. 무역은 영국인 만이 하게 되었다. 법은 물론 영국 법이었고 퀘벡인은 정복된 민족의 서러움을 견뎌 내야 했다.

그런데 1770년대의 이웃 미국 독립 전쟁으로 인해 다수의 왕권 지지자 (Orangists)가 캐나다로 망명하며 캐나다는 이들을 환영 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만 거주 할 수 있는 대규모의 영토를 요구했다.

캐나다는 이들을 현 Ontario 지역에 정착 시켰다. 왕권지지자를 포함한 영국계 캐나다인들은 퀘벡인에서 떨어져 살겠다는 소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캐나다를 이분화하여 저 캐나다(Lower Canada)와 상 캐나다(Upper Canada)로 분리했다.

저 캐나다는 지금의 퀘벡주, 그리고 상 캐나다는 현 온타리오주 이다. 주목할 것은 이중 캐나다 체제하에서 퀘벡은 어는 정도의 자주성을 부여받아 불어, 프랑스 문화, 카톨릭 종교 등을 회복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 캐나다 체제는 1840년에 막을 내리게 된다. 이유는 주로 두 가지로 본다. 첫째 상 캐나다의 재정적자는 저 캐나다에 비해 수 배 더 심하여 저 캐나다와 합치므로 이 문제를 해소하려고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1832년에 시작한 이른바 퀘벡 애국자 반란 (Revolt of Patriots)으로 인한 보안 문제 해소 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미국의 침입에 대한 방위 대책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1840년에 두 개의 캐나다는 다시 단일 캐나다로 돌아 온다.

1840년대부터 미국과의 합병 문제가 심해지고 또한 동 서부지역을 연결하는 철도의 필요성 제기, 나라생존에 필요한 인구 증가 및 영토 확장으로 인한 시장 확보 등을 위하여 1867년에 퀘벡주, 온타리오주 그리고 Nova Scotia, New Brunswick 및 Prince Edward Island로 구성된 새로운 캐나다가 탄생했다.

1867년의 헌법(British North American Act: BNAA)에 따라 퀘벡를 포함한 주 정부는 광범위한 자주권을 부여 받았다. 연방정부는 국방, 외교, 화폐, 우체국 등 캐나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통치권을 부여 받는 대신 주정부는 지역 경제개발, 교육, 보건, 문화, 의료 서비스 등 주민의 사회 복지 관련 분야의 행정권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주정부의 통치권의 상당부분이 연방정부로 이양 되었다. 퀘벡인이 큰 관심을 갖는 불어 사용문제는 원칙적으로는 불어가 국가적 언어이지만, 온타리오주의 반대로 불어 사용은 퀘벡주의 공공기관 및 사생활에 국한되고 말았다. 1867년의 연방 체제는 퀘벡주의 자주권 행사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조용한 혁명의 역사적 배경을 요약한다면 1763년부터 1960년까지 퀘벡인은 정복된 민족으로서 정치 및 경제분야에서 영국권 캐나다의 치욕적 지배에서 탈피를 못 하고,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 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자발적으로 개척하지 못하는 열등감에 시달려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조용한 혁명은 바로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서 탈피하는 역사적 현상이다

 

7.1.2 경제적 배경

지속적 영어권 캐나다의 지배는 결국 퀘벡 경제의 취약함을 야기시켰다. 우선 산업 구조를 보면 19세기 말 산업혁명 시절부터 퀘벡 산업구조는 노동 집약적 신발 산업, 의류 산업, 가죽 산업 등이 산업의 핵심이라면 온타리오 산업 구조는 자본 집약적 산업 즉 기계 산업, 자동차 산업으로 구성되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구조를 구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퀘벡주 산업에 필요한 자본금은 미국 혹은 영어권 캐나다인들의 자본이었고 기업의 지도급 일자리는 영어권 퀘벡인이 독점 하였다.

또한 열등한 퀘벡주의 교육제도로 인해 상업화에 필요한 숙련 근로자 및 경영 전문가가 보기 드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퀘벡인의 소득수준은 온타리오에 비해 27% 낮은 수준에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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