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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12)

 

(지난 호에 이어)

 

당시 권위 있던 신학자, Louis-Adolph Paquet 는 이러한 말을 했다. “Notre mission est moins de manier des capitaux que de remuer des idees; elle consiste moins allumer le feu des usines qu’a entretenir et faire rayonner au loin le foyer lumineux de la religion et de la pensee.”’(Lacoursiere p. 135) (우리의 사명은 자본금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이념을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공장을 작동하는 것보다는 사상과 종교가 불타는 아궁이를 멀리 펼치는 것이다. 이때부터 퀘벡인의 경제 및 경영에서의 실력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영어권 사람들은 퀘벡인의 실력을 의심하는 반면에 불어권 주민들은 반대주장을 했다. 한 증거물로 1900년에 Alphonse Desjardins 이 창립한 Caisses populaires를 지적한다.

 

4.12 퀘벡주의 사회 개혁운동

Alphons Desjardins 은 군인, 신문기자, 공무원 등의 직책을 지낸 지성인이었다. 그는 농촌에 은행의 부재 때문에 경제 활동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을 보고 회원이 경영하는 금융조합을 창립한 것이다.

지금 퀘벡 주민 중 80%가 회원이고 Caisses populaires Desjardins 의 자산은 수 십 억불이나 되고 캐나다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금융기관 중의 하나다. 불어권 사람들의 경영 실력에 대한 논쟁은 1960년 대까지 계속 되었다.

20 세기가 막을 올리면서 불어권 퀘벡 주민들의 반항 운동은 더 조직화 되어갔다. 1904 년에는 Montreal에서 카톨릭 청소년 협회 (ㅣ’Association catholique de la jeunesse canadienne francaise: ACJC) 가 탄생했다. 이들은 다음의 선언을 했다. ‘‘…. la race canadienne a une mission speciale a remplis sur ce continent…elle doit pour cette fin garder son caractere distincte de celui des autres races’’ (Lacoursiere p. 136) (우리 민족은 북미 대륙에서 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러한 사명을 다 하려면 타 민족과 차별화되는 특징을 보여야 한다.)

여기서 사명이란 카톨릭 종교의 전파와 불어권 캐나다의 자주성 확립을 의미한다. 본 회원들은 전문학교(Cours Classiques) 학생들이었다. 당시 미국의 역사 학자인 Mason Wade 는 이 협회가 종교적 사명을 가지고 불어권 캐나다의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다고 지적했다.

 

4.13 영어권 캐나다 이민 및 불어 보전

한편 20세기 초부터 이민이 본격화 되어 1901-1910 기간 1,632,100 명의 이민자가 캐나다로 유입 되었다. 그 중 불어권 이민자 수는 불과 15,835 명이어서 불어권 캐나다는 더욱 소수민족화 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불어 사용 전망에 대해 불안감은 느꼈다. 마침내 Henri Bourassa 는 유명한 일간지 Le Devoir 지를 창립했다. 본 지의 철학은 ‘fais ce que doit’ 즉 해야할 일을 하자.

 Le Devoir 의 철학은 진리를 위해 행동으로 싸우자 라는 뜻이 내포 되어있으며 오늘날까지 퀘벡 정치 사상을 인도한 일간지다. Le Devoir 지의 전투 대상 문제는 퀘벡 외부 지역 특히 Ontario에서의 불어 보전이었다.

Ontario주를 비롯 영어권 주에서 불어 학교를 폐지하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Ontario London 의 주교인Michael Francis Fallon 는 공개적으로 불어학교 폐지를 주장했다.

1910년 9월에 Montreal에 있었던 종교 대회에서 영국의 Westminster 대주교 Francis Bourne 은 이러한 말을 했다. “캐나다가 진실로 카톨릭 국가가 되려면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 언어로서의 영어, 영어로 생각하는 것, 영어 문학 즉 영어식 사고 방식을 성당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성당의 구원사명은 힘들 것이고 혹은 지연될 것이다.”

Ontario에 있던 Orangists(과격한 반 프랑스 캐나다 반대 집단)의 말을 들어 보자. “. l’usage du francais dans les ecoles publiques de l’Ontario constitue une menace a l’integrite de la province en tant que communaute anglaise.’’(Lacoursiere p. 138) (공립 학교에서 불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Ontario 주가 영어 공동체로서 존재하는데 위협을 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교에서 불어교육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장기간의 공론 끝에 1912년에 Ontario 주에서의 불어 교육은 초등학교 1 학년에 국한되고 말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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