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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선의 大佳里(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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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66)-에베소(5) '아데미 여신'(The Artemis of Ephesus)

 

그 큰 원형 대극장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그 큰 소란을 피우며 섬기던 아데미(Artemis)때문에 에베소를 떠나야만 하였던 사도 바울이 결국 AD 64년 로마에서 순교한 후,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던 디모데마저 AD 80년, 아데미 여신의 축제에서 그 “여신은 우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파하자 이에 광분한 군중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고 전해오는 풍요의 여신, 아데미는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신성시하였던 신으로, 처음에는 킬벨레(Kylbele)라 불렸다고 합니다.

이 여신은 로마와 메소포타미아 및 아라비아에서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쳐

아랍인은 “알 라트(Al-lat, 알랏)”로, 이집트인은 “이시스(Isis)”로, 그리스인은 “아르테미스(Artemis)”, 로마인은 “디아나(Diana)”로 불렀으며 이오니아인들이 “아데미(Artemis)”라 불렀듯이, 여러 곳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결국은 다산(多産)을 의미하는 “풍요의 여신”이었습니다.

특히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의 가슴에는 유방이 24개가 달려 있고, 머리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성을 이고 있으며, 몸에는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을 상징하는 사자, 호랑이, 사슴 등의 짐승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매년 5월 아데미 축제날이 되면 유방과 같은 수의 24명의 흰 옷을 입은 여자 사제들이 앞에 서고, 뒤에는 자신의 고환을 아데미에게 바친 남자 사제들이 여신의 호위병처럼 뒤따르는 축제의 행렬이 아데미 신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신전을 출발한 아데미 여신과 축제 행렬은 에베소 시의 동쪽에 있는 마그네시아 문을 통해 에베소 시청에 이르러, 시청 앞에 있는 아데미 여신상을 만나게 되면

에베소 총독은 관저에서 나와서 아데미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총독의 인사를 받은 아데미 여신은 퀴레테스 거리를 지나 셀시우스 도서관을 거쳐 에베소 광장에 이른 후, 광장에서 왼쪽 방향으로 항구대로를 지나 부두에 이르면, 드디어 소들을 바치는 희생 제사가 드려졌다고 합니다.

남자 사제들이 24마리의 황소 고환을 잘라 아데미 여신의 목에 걸어 주면, 군중들이 함성을 터뜨리고, 무용수들은 음악에 따라 춤을 추는 동안, 도살된 소들이 제단에 올려지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데미 축제가 무르익게 된다고 합니다.

과연 무르익은 축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즈음에서 한가지 정정하고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입니다.” 라고 조금 전에 설명을 드린 것은 거의 모든 아데미 신상의 설명서에 나오는 말들로, 여신의 가슴에 있는 24개의 둥그런 모습을 유방이라고 표현한 대목입니다. 이는 유방이 아니라 황소의 고환이 맞는 설명일 것입니다.

실제로 신상의 사진을 자세히 보아도 유두가 없는 둥그런 모양입니다.

다산의 상징이기에 유방이라고 설명한 듯 하나, 실은 소의 고환이 다산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머리에는 또 커다란 바벨론 성을 표현하는 모자까지 쓰고 있었기에 이 축제가 끝날 즈음, 신전으로 돌아온, 그 해에 뽑힌 여신이 그 무게에 눌려, 과로사하는 일이 많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었습니다. (어디에서 기록을 보고 한 소리인지 아니면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몸에는 왜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을 상징하는 사자, 호랑이, 사슴 등의 다양한 짐승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 것일까요?

니므롯이 처음으로 언급된 곳은 창세기 10장에서 노아의 족보를 설명할 때입니다.

그런데, 유독 함의 후손들에 관한 언급이 6~20절에 이르도록 길어진 이유는 아마도 함의 후손은 구속 역사의 흐름을 방해한 측면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기록하고픈 이야깃거리가 많았다는 증거이겠지요.

8절에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용사라” 기록되었으나 개역 개정 이전의 성경에는 “첫 영걸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영걸”의 히브리어는 “기보르”로서, 이 단어는 통상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 폭군”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의 성경”은 창 10:8~9 절을 “개역 개정 성경”과는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게 다음과 같이 번역하여 놓았습니다.

“구스는 또 니므롯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세상에서 최초의 정복자였다. 그는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센 사냥꾼이었으므로 니므롯처럼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센 사냥꾼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이어서 10절에서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라고 되어 있어서인지 AD 1세기경의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는 바로 이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도록 선동하고, 주도한 인물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등장하는 네피림(Nephilim "하나님의 아들들"과 "인간의 딸들" 사이에서 탄생한 영걸: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처럼, 니므롯은 당대에 힘이 아주 강한,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어, 그네들이 차지한 땅이 비옥하면서도 들짐승들이 많아 거주민들의 안전과 평화에 지속적인 위협이 되었을 때(출 23:29-30, 신 7:22), 니므롯은 이러한 고충을 해결해주는 해결사로서 짐승들을 사냥하고 제압하여 유명세를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그를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거대한 무리가 생겨났고, 그는 거대한 세력(권력)을 가진 소위 ‘영웅’이 되어, 점점 불어나는 거대한 집단의 힘, 그 세력으로 자신을 신격화 하며, 바벨탑을 쌓아 올려, 마침내 하나님 자리에 앉아 하나님께 대적하고, 백성들의 영혼을 도둑질하여 하나님에게서 돌이키게 하는 적그리스도적 인물의 표상으로 변질된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하나님을 떠나서 풍요를 누리기 위하여 황소의 고환이 필요하니, 니므롯처럼 특별한 사냥꾼이 필요하였고, 돼지보다도 더 많은 젖이 달린 아데미가 필요한 타락한 도시, 에베소가 되었나 봅니다.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였던 아테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신전은 3번이나 완전히 새로 세워졌는데, 첫 번째는 거대한 홍수로, 두 번째는 방화로 소실된 후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의 후원으로 세번째 지어진 신전이 있었는데,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네 배나 큰, 길이 137m, 너비 69m, 높이 18m에 127개의 기둥을 가지고 있었다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는 신전이었습니다.

이런 신전이 기원후 263년에 Goth인들에 의해 파괴된 후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그 많은 기둥들이 각처에서 교회를 비롯하여 건물들을 지으며 필요한 석재들을 이 곳에서 가져다 사용하여, 지금은 잡초뿐인 옛 터에 지름 2m의 돌기둥 하나만이 쓸쓸하게 남아 가끔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여 주고 있습니다.

많은 기둥들이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 건축에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막상 성 소피아 성당에 가서 보는 동안, 벌려진 입을 닫지 못한 바람에 어디에 사용되었는지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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