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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38)-쿰란(Qumran) '사해 사본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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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들이 들고 다니던 성경책은 구약 37권과 신약 27권이 합본되어 가죽 장정으로 만들어진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주머니에 들어가는 전화기에 담아 가지고 다니던지, 그도 아니면 교회에 준비되어 있어, 자리에 앉으면 눈 앞에 꼽혀 있던지, 그도 아니면 더 편하게 성경을 읽을 시간이 되면 앞의 스크린에 비추어 주기에 굳이 책을 집어 들고 페이지를 찾는 수고를 덜어주는 편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약 3,500년 전, 모세가 처음 기록을 시작한 후로부터 약 1,900년 전의 사도 요한까지 1,600여년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듯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들이 기록한 여러 문서들 중에서 66권의 책들을 간추려 신성한 계시인 정경(正經, canon)으로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연구와 종교회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였습니다.

현재의 구약 39권만 정경으로 밝힌 최초의 경우는 A.D. 90년경의 얌니아 랍비 회의에서였습니다. 그리고 A.D. 397년 칼타고 종교 회의에서 구약 39권과 현재와 같은 신약 27권으로 정경을 확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자가 생겨나면서 기록이 시작될 때에는 아직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었기에 돌에 새기던지, 혹은 점토판에 적어 놓던 방법이었으나, 방대한 양을 기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차에 갈대 줄기를 엮은 “파피루스”의 발명으로 쉽게 글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수입해 온 파피루스 원료를 편의상 “비블로스(byblos)”라 부르기 시작했고, 후에 글자가 쓰여진 파피루스를 “biblion”으로 부르며 “파피루스 두루마리” 또는 “책”이라는 뜻이 되었다가 후대에는 “책 중의 책”이라는 뜻에서 성경(聖經Bible)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세가 율법의 말씀을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 31:24~26) 하였듯이 제일 처음 기록된 자필 원본(Autograph)이 분명 있었으나, 여러 차례 성전이 파괴되는 동안 소실되어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필사본(Apograph)들만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며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자 “토라(Torah)”라고 부르는 구약 성경의 처음 5권, 즉 모세 오경의 수요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처음에는 제사장들이 필사하는 일에 종사하다가(신 17:18) 후에는 서기관들이 이 일을 맡았으나 예레미야 8장 8절에 기록되었듯이 서기관들의 거짓된 붓이 거짓되게 하는 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기관들의 수가 많아지게 되자, 성경의 필사가 전문화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일도 서기관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은 엄격한 규정을 따랐다고 합니다.

양피지는 유대인이 만든 정결한 동물의 가죽만 사용할 것, 각 양피지는 같은 수의 단(段)으로 구분할 것, 한 단에는 48~60의 줄을 가질 것, 먹(墨)은 특별하게 제조한 검은 먹만 사용할 것, 글자나 단어를 기억으로 기록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인증된 사본을 보고 기록할 것.

하나님을 가리키는 '야훼'나 '엘로힘'을 기록할 때는 매번 펜을 경건하게 닦고 기록해야 했으며, 실수가 하나 생긴 경우에는 그 장(章)을 폐기해야 했다고 합니다. 또 성경을 필사하는 중에는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말아야 하며, 왕이 들어와도 쳐다보지 말아야 하는 등, 19가지의 필사 규정과 방법은 치밀했고, 필사자에 대한 감독도 엄격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던 곳이 바로 쿰란(Qumran) 공동체인 것입니다.

한때는 세례 요한도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는 쿰란 공동체,

그들이 바로 “사해 문서” 중의 “쿰란 사본”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형성하고 있던 종교단체였습니다.

특기할 점은 그들이 성경을 필사하면서 "야훼"라는 단어가 나오면 매번 펜을 경건하게 닦고, 나가서 목욕재계 하곤 들어와서 다시 썼다고 합니다.

그때 사용하던 목욕탕이 아직도 건재하여 우리들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 물이 귀한 곳에서, 그렇게 자주 목욕을 하면서 성경을 쓰던 그네들의 믿음과 경건성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그들이 정성 들여 필사한 그 많은 성경들도 유대가 망하고, 로마에 의해 철저히 유린될 때, 그 두루마리들을 항아리에 넣어 이 광야 깊숙이 묻어 놓곤 어디론가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 후 항아리 속에서 잠자던 성경이 빛을 보게 된 것은 1947년 봄이었습니다.

베두인족의 “무하마드 아디브”라는 소년이 여리고 남쪽 사해의 서북쪽 2km 지점에 있는 황무지, “와디 쿰란” 지역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고 있던 중, 가파른 암벽에서 동굴을 하나 발견하곤 잃어버린 양이 그 동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 안에 돌을 던졌는데, 안에서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아마포(亞摩布)에 잘 싸인 가죽 두루마리들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주변, 몇 개의 항아리 안에는 양피지, 그리고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이 기름칠한 헝겊에 싸여 있었기에 그는 이것들이 골동품으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돌아가 고물 수집상에 팔면서부터 여러 골동품 상인들의 손을 거쳐서 4개는 시리아의 예루살렘 정교회 대주교인 마르아티나시우스 사무엘이 샀으며, 3개는 베들레헴의 아랍 상인을 통해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수케닉(Sukenik) 교수가 구입하였습니다.

1953년 수케닉 교수가 사망한 후,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을 지낸 그의 아들 야딘(Yadin)이 교수이자 고고학자가 되어 1954년에 사무엘 대주교에게서 두루마리 4개를 사들였고, 1967년에 두루마리 1개를 추가로 구입하여 사해 사본 두루마리를 모두 8개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두루마리들은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성서의 전당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탄소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조사 결과, 사해 두루마리들은 BC 168년에서 AD 233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해 사본”, 혹은 “쿰란 사본”이라는 고문서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두 열 두 동굴에서 600개의 사본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많은 양의 외경과 위경 저작들이 들어 있어, 구약 성경의 본문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이 사본이 질그릇 항아리 속에서 약 2000년 이상 보관되었음에도 썩거나 많이 훼손되지 않은 것은, 사해 주변의 건조한 기후의 영향이었다고 하니, 하나님께서도 일조를 하신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발굴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오묘함이 성경의 비밀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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