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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CHO
바보와 똑똑이(Dumb & Smart)(2)
JOHNCHO

 

(지난호에 이어)

 그때만 해도 동양인도 많지 않을 때고 더구나 내가 일하던 그곳엔 수백 명 이상의 노동자 중에 동양인은 필자 하나였고, 생전 옷을 벗은 남자 동양인의 모습을 처음 보는 그들에게는 낮이 설었는지 시끌시끌하던 샤워장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잠시 조용했던 샤워장은 다시 시끌시끌해졌고 그런대로 아침마다 샤워하는 버릇을 굳히게 되었다.

 

 또 한가지 필자를 괴롭혔던 것은 동료들 중 대부분이 30-40년 이상을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고, 더욱 놀랄 일은 그들 중 10손가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기계를 다루며 똑같은 일을 계속 하면서 사고를 두세 번씩은 모두 겪었고 그때마다 손가락을 잃어 버렸다는 것인데 아무리 직장에서 나오는 연금 때문에 조기 은퇴를 할 수 없다지만 먹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만 해도 잘산다는 선진국으로 이민을 온 필자로서는 이해가 어려웠으며, 또 당시에는 그들이 참으로 바보스럽고 미련하게도 느껴졌다.

 

 평생동안 한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계속하며 매번 일을 시작할 때는 일하기가 싫어 얼굴들을 찡그리던 그들, 반대로 일이 끝나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16시간이라는 장시간의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 시간이라며 마냥 즐거워하던 표정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들은 참으로 선량하고 순수하고 또 정직하게 사는 보통사람들이었지 바보들도 미련한 것도 아닌 것이었다.

 

 필자는 몇 달 후 그 직장을 떠났고 또 그 이후 한국인들이 여러 명 입사하여 몇 달 또는 길게는 몇 년씩 일을 하였지만 30-40년씩 그곳에서 일을 계속하는 한국인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국에서 이민오신 분의 대다수가 높은 교육 수준과 어느정도 재력도 있으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이 공장에서 심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 육체적으로 감당키도 어렵고 그렇게 하기엔 머리가 너무 좋아 모두 그보다 빠른 길을 택하고 현재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공을 하신 것이다.

 

 당시엔 공장일은 물론이고 밤에 지렁이를 잡아 수입을 올리며 생전 안해보던 용접일(Welding)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하던 이민초기 한국인들의 생활은 지금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민생활 그대로였다.

 

 이렇게 공장 막노동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하며 자리를 굳혀가던 우리 한국인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따라서 살 집과 가게들을 시작하게 되었고 또한 당시만 해도 경제가 많이 뒤떨어져 있던 한국은 당시 외화가 너무도 부족하여 외화벌이라면 무엇이든 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엔 관광공사라는 단체까지 만들어 일본 노동자들까지 한국으로 초청해 외화를 벌어들였으며 그것이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생관광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해외에 나와 있던 이민자들이 송금하는 돈이 아주 절실했고 또 요긴하게 쓰여졌던 것이다. 특히나 지금은 편의점으로 통하지만 당시엔 구멍가게를 하시는 분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며 구멍가게 하나 하는 것이 소원이 되어 버렸고 필자를 포함해 많은 한인동포들의 생활과 돈 버는 수단이 되었으며 따라서 매상에 따른 권리금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비록 일하는 시간이 장시간이고 일년 365일 쉬는 날도 없이 부부가 온종일 얼굴을 맞대고 하여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그 구멍가게들은 한인동포들에게 경제적인 원동력이 되었고 사업의 밑천과 부동산을 장만할 수 있는 다운페이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우리들에게는 큰 효자 노릇을 한 것이다.

 

 당시엔 캐나다 돈으로 $100정도면 한국에서의 한가족 생활비가 충족되었으며 가족과 친지를 두고 이민 온 많은 사람들은 한국으로 송금을 하며 생활하고 있었으며 구멍가게나 또는 부부가 직장을 가지고 맞벌이를 했던 그 당시는 매달 $100씩 송금을 하더라도 큰 부담이 가는 돈은 아니었다.

 

 물론 이제는 거꾸로 캐나다에서 돈을 벌어 한국으로 생활비를 부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으며 오히려 한국에서 송금을 캐나다로 하며 많은 유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고, 또한 투자이민자들은 많은 돈을 가지고 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민 초기에는 이민을 오는 동기가 좀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함이었다면 이제 경제가 풍요로워진 한국에서 이민을 오는 최고의 이유는 아이들의 교육이란다. 아이들 교육을 위하여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는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는 우리 한인들은 집을 살 때도 그 동네 학군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며 자식들에 대한 교육의 열정을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 한인엄마들은 모두가 한석봉 엄마라는 생각이 들며 정말 한국 엄마들은 대단한 여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많은 한인학생들이 외국으로 나와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는 것은 장래 한국의 발전에 대한 투자이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들긴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부부생활에 소홀하다 보니 간혹 부작용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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