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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아, 좋아했는데 잘 안되더라

 

 우리 가족에게 ‘꺼벙이’라는 반려견이 있었다. 딸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작은 요크셔테리어를 안고 왔다. 일하는 곳에서 “강아지를 너무 예뻐하니까 키워 보라고 주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 부부는 아직 이민 정착도 제대로 못하고, 가게를 맞교대해야 하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딸아이에게 “지금은 강아지를 돌볼 여력이 없으니, 다시 돌려주자”라고 타일렀다. 달래고 윽박지르고를 여러번 해도 답이 안 나오자 아내가 중재 안을 내놨다. “이왕 가져왔으니 며칠만 길러 보자”는 거다. 나도 딸이 울고 불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승락했고 결국 ‘꺼벙이’는 10여 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살게 된다.

 딸은 지극 정성으로 똥오줌, 먹이 주기, 목욕, 산책을 도맡아 했고 꺼벙이는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하물며 잠을 잘 때도 침대에서 끼고 잘 정도였다. 꺼벙이는 아내와 아들과는 비교적 사이가 좋았는데, 유독 나와는 사이가 안 좋았다. 자기를 처음 데리고 온 날, 내가 펄쩍 뛰면서 반대한 것을 함께 사는 내내 기억하는 듯했다. 몇 달이 지나서 안 것이지만, 꺼벙이는 베지테리언이어서 채식 사료만 먹었고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어서 냄새가 심했다. 만약 내가 이 사실을 알면 트집 잡아 강아지를 돌려보낼까 싶어, 딸과 아내가 숨긴 것이다.

 성격도 까탈스러워 작은 소리에도 신경질적으로 짖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손님들이 올 경우는 미리 꺼벙이를 방에 가두어야 만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딸과 나는 자주 다퉜고, 서로 속이 상했다. 몸에 장애가 있어 민감한 것으로만 알았던 꺼벙이는 사실 정신적 장애도 있었다. 동물병원 닥터에게 “자주 신경질적으로 짖는다”고 하니까, 그런 증상은 “어렸을 때 구박을 받거나 상처 받은 기억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 주인에게 “혹시 그런 일이 있었냐”라고 물으니, “자기네도 그 전 주인에게서 가져올 때 비슷한 사연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상처를 준 사람이 중년의 남자였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 뒤부터 나는 속으로 ‘저 놈이 그 상처 받은 사람을 나라고 생각하는구나’ 하는 짐작을 했다. 

 세월이 지나 딸이 교환 학생으로 한국을 몇 번 다녀오는데, 그때마다 꺼벙이 돌보기는 아내의 몫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딸이 아예 한국으로 결혼을 해 가버린다. 딸이 없어지자, 꺼벙이는 배지테리언, 아토피성 피부염, 예민성 신경 질환에다가 심한 우울증까지 걸린다.

 강아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가 아무리 잘해주어도 딸만큼 하겠나” 싶어 나도 안타까웠다. 더 큰 문제는 아내가 오랫동안 한국을 다녀올 경우였다. 아들마저 대학 다니느라 워털루에 가 있었기에 집에는 꺼벙이와 나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피부염이 심해 약도 발라줘야 하고 산책도 시켜야 했는데 그때마다 도망가거나, 으르렁거렸다. 냄새도 심해 목욕도 2주일마다 시켜줘야 하는데 걱정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들이 2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와, 약을 발라 주고 산책과 목욕을 시켜야만 했다. 그런 과정은 한국에 외손녀가 생기면서 더욱 잦아진다.

 

 꺼벙이가 죽은 날은 토요일이다. 아마 우리가 키운 지 10여 년쯤 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80세쯤 된 나이였기에 늙고 힘이 없었다. 아내는 다음날 한국에 가야 돼 짐을 싸며, “꺼벙이가 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지내지?”하는 걱정을 했다. 꺼방이도 오래 함께 살다 보니 눈치를 챈 듯, 그날따라 불안해 보였다. 그러던 중 우리 집 밖을 산책하던 어떤 강아지의 소리를 듣더니 목이 터져라 짖어대기 시작했다. 한 10여 분간을 짖어대어 아내가 “저러다 숨 넘어가겠네” 했는데 말이 씨가 됐는지, 갑자기 쌕쌕거리며 숨도 못 쉬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것이다. 말 못하는 동물이었지만, 눈동자와 온 몸으로 고통을 토해내었다. 마침 연휴의 토요일이어서 동물병원도 일찍 문을 닫은 상태였다. 여러 곳에 연락을 하고 부산을 떤 후, 가까스로 오후 늦게 병원에 갔다. 거의 다 죽어가던 꺼벙이가 산소호흡기를 부착해주니 신기하게도 의식을 찾았다. 의사 선생은 “지금은 의식을 다시 찾았지만,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며 아쉽겠지만 그만 보내 주라는 것이다. 입원을 시켜 생명 연장을 할 수도 있지만, 몇 주 정도 의식 없이 숨만 붙어있는 상태일 테니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다.

 병원 밖을 나온 아내와 아들, 나는 아무 말없이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긴 침묵 끝에,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먼저 입을 뗐다. 아내는 다음날 한국으로, 아들은 마침 엄마를 배웅하러 온 것이라 학교로 돌아가야 하고, 나 또한 앞으로 혼자 가게를 봐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슬프고 힘든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와 나는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슬피 운 적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해가 완전히 떨어진 뒤에나 우리는 꺼벙이를 보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성조가를 불러 세계의 주목을 받은 레디 가가(Lady Gaga)가 이번엔 자신의 반려견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 촬영으로 파리에 가 있는 동안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두고 간, 두 프렌치 불도그(French bulldogs), 코지(Koji)와 구스타프(Gustav)가 총까지 들고 위협을 한 괴한들 한테 납치된 것이다. “납치당한 반려견 행방을 아는 사람한테 불문곡직하고 50만 달러를 주겠다”고 선언했다는데, 이를 두고 호사가들이 입방정을 떤다. “입맛 다실 정도의 금액이 아니니, 통 크게 200만 달러쯤은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됐던 다행히 두 마리 모두 무사히 돌아왔지만, 돌아오는 과정이 미스터리투성이어서 앞으로 유사 모방 범죄가 많아질까 염려된다. 레이디 가가의 반려견 생환 기사를 보며 무지개다리를 건넌 ‘꺼벙이’가 생각났다. “꺼벙아! 아저씨도 너 좋아했는데, 잘 안되더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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