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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가닥 루시’ 보러 가요

 

 조금 이른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올 가을 경에는 여행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미리 이런 상상을 해본다. 여행이라고 하지만, 아직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를 가는 것은 좀 부담스럽다. 그래서 미국 버펄로(Buffalo) 옆에 있는 제임스타운(Jamestown)이라는 마을을 가려 한다. 성질 급하신 분들은 벌써 구글에서 제임스타운을 찾아보실텐데, 그러실 필요 없다. 아래 글에 가는 길과 즐길 장소를 자세히 설명할 테이니까.

 

07:50 오늘은 2021년 9월 27일 월요일, 새벽 공기가 상큼하고 맑은 날이다. 이번 여행은 아내의 직장 후배 부부와 함께 한다. 8시까지 집으로 오기로 해서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 후배는 몇 달 전까지 암 투병을 해서 편도 3시간 정도의 여행이 좀 무리인 듯했지만,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고 해, “사는 게 별 거냐? 이 정도 호사도 못하면 토론토에 왜 이민 왔냐?”라고 부추겨 콧바람을 쐬러 간다.

 

 지난해 초여름에 그녀는 왼쪽 가슴에 팥죽 새알만한 딱딱한 덩어리가 생겨 병원을 찾았다. 두 달 전에 처음 발견되었지만, 통증도 없고 크기도 작아서 무시하고 지냈는데 크기가 점점 커졌다. MRI 검사를 한 결과 종괴(덩어리)가 있었고 육종암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육종암이란 뼈, 근육, 신경 등의 골격에 발생하는 암을 말한다. 흔히 알고 있는 암과 달리 몸의 골격을 구성하는 조직에서 발생해서 육종(Sarcoma)이라 구분한다고 한다. 이 암은 일반 암과 달리 외부와의 접촉이 불가능한 부위에 발생하므로 환경적인 요인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어서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희귀 암이다.

 

 두 달 정도의 약물치료를 하고 담당 의사가 “종양의 광범위한 절제가 필요해 갈비뼈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종양의 악성도가 높지 않을 경우, 완치율이 90%라는 말에 왼쪽 갈비뼈 세대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는데, ‘뼈를 깎는 고통이란’ 뜻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10월 경에 수술을 끝내고 6주 뒤부터 일상적인 걷기와 간단한 운동을 하며 계속해서 항암 치료를 받았고, 지난봄에 항암 치료를 마쳤다. 다행히 조기 발견했기에 결과가 좋았는데, 그러다 보니 그동안 어디 변변히 다닐 수도 없었다.

 

 아, 저기 차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언니, 날씨가 너무 좋아요?” 아내가 반갑게 그녀와 포옹을 한 후 차에 올랐다.

 

09:05 우리는 407 하이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가, 퀸엘리자베스웨이(QEW)로 빠져 15분 거리에 있는 스토니크릭(Stoney Creek)의 팀호튼스에 들러 커피와 간단한 요기를 했다. 점심 먹을 버펄로(Buffalo)에 있는 식당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 화장실을 다녀와 차에 올랐다. 바로 포트에리(Fort Erie)로 갈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나이아가라 폭포도 한번 볼 겸 나이아가라로 향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갔기에 수십 번이나 간 곳이지만 오랜만에 오니 속이 뻥 뚫린다.

 

 그곳에서 폭포 상류를 따라 포트에리까지의 경치는 지역주민들이 추천하는 비경이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폭포 하류의 나이아가라온더레이크(Niagara-on-the-Lake) 쪽을 가다 보니 반대쪽 상류는 경험하기 쉽지 않다. 길을 따라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자리 잡고, 강 건너에 있는 섬, 강물에 비친 구름이 가슴을 한 옥타브 떨어트리게 만든다. 오랜만에 커플 사진도 찍고, 한참의 여유를 부리다가 피스브리지(Peace Bridge)를 건넜다.

 

 

11:20 미국 버펄로 검문소를 지나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올리브가든(Olive Garden)이라는 이태리 레스토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시내에도 지점이 있지만, 우리는 서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매킨리몰(Mckinley Mall) 지점을 찾았다. 주소는 3701 Mckinley Pkwy, Blasdell(+1 716-822-1275)이다. 점심 스페셜 메뉴인 수프, 샐러드, 갓 구운 빵과 파스타를 선택했다. 파스타 종류가 다양해 이것저것 시켜 나눠 먹었는데 양도 푸짐하고 맛도 있었다. 이곳은 버팔로 맛집으로 유명한데, 4인이 팁을 포함해서 $100 정도 나왔다. 와인을 곁들여도 $30 정도만 추가하면 될 정도로 가성비가 좋다. 하지만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어 적어도 2시간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이제 이곳에서 40분만 더 가면 목적지가 나온다.

 

13:50 목적지인 제임스타운 <국립 코미디센터(National Comedy Center)>에 도착했다. 주소는 203 W 2nd St, Jamestown, NY 14701 미국이다. 제임스타운(Jamestown)은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인데, 이곳에 5천만 달러 규모의 코미디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이 생기게 된 것은 이곳이 미국 '코미디의 여왕'인 여배우 루실 볼((Lucille Ball/1911∼1989)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출연한 ‘왈가닥 루시(I Love Lucy)’라는 시트콤은 195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무려 68%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총 179편의 에피소드가 방송된 후 왈가닥 루시는 1960년대까지도 방영되었고 지금도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신디케이트로 재방영되고 있다. 방영기간 동안 5개의 에미상을 수상했는데, 1970년대에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다.

 

 

 2018년에 개관된 박물관은 코미디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 기념하기 위해 배우들의 마음을 모아 만든 곳이다. 미국 코미디물의 역사와 자료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유명 코미디언의 대사를 흉내 내볼 수 있는 '코미디 가라오케' 등 음향·영상 체험 시설도 있고, 조지 칼린, 채리 채플린 등 세상을 떠난 유명 코미디언들이 남긴 유품과 비디오물을 둘러볼 수 있는 전시공간도 있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정기 휴관이고 입장료는 성인 $30, 시니어 $27이다. 여유롭게 관람하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웹 사이트를 찾아보면 가끔 스페셜 이벤트를 볼 수 있다.

 

15:20 돌아오는 길에 버팔로에서 주유를 했다. 미국이 기름값이 싸서 국경 넘을 때는 기름을 채운다. 다리를 건너서 포트에리로 쪽 406 하이웨이를 타고 세인트캐서린스(St. Catharines)를 가로질러, 다시 퀸엘리자베스웨이(QEW)를 타면 왔던 길이 아니라 지루하지 않다. 제임스 타운에서 쉬지 않고 토론토의 노스욕까지 오면 3시간 15분 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벌링턴 비치(Burlington Beach) 교차로에서 나와 화장실도 들를 겸 차를 한잔하고 다시 407 하이웨이를 타고 집으로 왔다. 차 안에는 권진원의 <살다 보면>이 흘러나왔다. 살다 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수많은 근심 걱정 멀리 던져 버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20:10 “피곤하지 않아?” “아니요. 하늘이 날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오늘, 하루가 소중한 것을 느꼈어요.” 그녀가 아내와 포옹을 하고 다시 차에 오른다. 오늘 하루 종일 운전을 한, 그에게 “오늘 수고 많이 하셨어요” 했더니, “다음 번엔 하룻밤 자고 오는 코스로 잡죠”하며 차창을 올린다. 투병하는 아내를 보살피느라 지친 그의 모습 속에 부부의 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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